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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조선말기 춘방(春舫) 김영(金瑛)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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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金瑛, 1837~1899년 이후)은 초명(初名)이 종대(鍾大), 자는 성원(聲遠), 호는 춘방(春舫), 본관은 분성(盆城)으로 고종연간(1863~1907)에 활동한 화가이다.1) 19세기 중인시사의 하나인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에서활동했고,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과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그림에 제시(題詩)와 제발(題跋)을 남긴 사실이 알려진 정도이다.2) 군소작가로 여겨지던 김영이 회화사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청대 정통파 화풍을 수용하여 근대기의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조석진(趙錫晉,1853~1920)의 산수화풍에 영향을 끼친 점이 지적되면서이다.3) 그러나 문 헌자료의 한계로 김영의 신분을 비롯해4) 작가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접근이나 그의 회화세계를 조명해볼 수 있는 작품의 발굴과 조사는 충분치못한 상태였다. 김영은 산수, 화훼․화조, 사군자, 괴석도에서 발군의 기량을 드러낸서화가이다(표1 참조). 19세기 조선 화단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던 청대정통파, 양주화파, 해상화파의 신화풍을 수용하여 화단의 다채로운 양상에 복무하였다. 산수화는 그동안 몇몇 작품만이 거론되어 왔으나 현재 파악되는 작품의 규모와 수준으로 볼 때 김영의 회화세계를 대표하며, 19 세기 후반에 정통파 산수화풍을 적극적으로 구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보다 주목을 요한다. 먼저 시서화(詩書畵)에 침잠한 전형적인 여항 문인화가로서 김영의 삶을 살펴본 뒤 그의 작품세계의 전반적인 양상과 특징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들어가며

김영의 삶과 교유

산수화

≪산수병풍≫의 선후관계와 시기 문제

은거 및 이상향 동경의 탈속적 주제

화훼·화조화

사군자·괴석도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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