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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9세기 여항문화의 비평가, 남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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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병철(南秉哲, 1817~1863)은 자가 자명(子明), 호는 규재(圭齋)이며, 노론의 명가인 의령남씨의 후예이다. 영조 때 대제학을 지낸 남유용의 아들이자 정조 연간의 저명한 문인이었던 남공철이 그의 종고조이다. 어머니는 김조순(金祖淳)의 딸이며, 부인은 헌종의 장인 김조근(金祖根)의 딸이었다. 즉 외가와 처가가 모두 안동김씨 집안으로서 남병철의 가문은 헌종 철종 대의 세도정치기에 권력의 중심부에 속해 있었다. 헌종은 동서인 남병철을 각별히 총애하여 ‘규재’라는 호를 내려주기도 했다. 남병철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 규장각 대교, 승지, 예조판서, 성균관 대사성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고, 철종 초년에는 문형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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