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 아래 유서 깊은 마을이 여럿 있는데 계동도 그 중 하나다. 오늘날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 일대가 바로 계동이다. 그곳에는 박지원(朴趾源)과 손자 박규수(朴珪壽)가 살던 집이 있었다. 옛글을 통해 그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조선시대 계동은 계생방(桂生坊), 제생동(濟生洞)이라 불렀다. 조선후기지도를 보면 그 서쪽에 회동(灰洞) 혹은 제동(濟洞), 재동(齋洞)이 따로 있어 다소 혼란스럽지만 오늘날 계동과 다름이 없는 듯하다. 그 북쪽 삼각산 자락을 총계산(叢桂山)이라 불렀기에 계산동(桂山洞)이라는 명칭이 생겼고 이를 줄여 계동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