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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9세기 중반 경화 지식인의 독서와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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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주(洪翰周, 1798~1868)는 󰡔지수염필(智水拈筆)󰡕의 저자로 학계에 알려졌다. 자(字)는 헌경(憲卿), 호는 해사(海士)ㆍ해옹(海翁)ㆍ쌍송관주인(雙松館主人)ㆍ운당(芸堂) 등이며, 본관은 풍산이다. 직모(稷謨)의 아들, 낙명(樂命)의 손자, 상한(象漢)의 증손이고, 홍석주ㆍ길주 등과는 재종간이다. 모친 청풍김씨는 김시묵(金時黙)의 딸이다. 아들인 우창(祐昌)은 예조판서와 이조판서, 의정부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면면을 보면, 혁혁한 경화세족의 집안이다. 그는 20대 중반에 음직으로 벼슬길에 나간 이후 내․외의 낮은 관직을역임하였다. 30세를 전후한 이른 나이에 경상도의 개령현감(開寧縣監)을 지냈고, 이후 중앙의 낮은 관직을 거쳐 40대 초반에 황해도 배천군수(白川郡守), 후반에 의성현감(義城縣監), 예순을 전후한 나이에 상주목사를 지내고 이어 보성군수(寶城郡守)가 된다. 그러나 상주목사로 있을 때의 문제 로 1862년 8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나주목의 지도(智島)로 유배된다. 홍한주는 배천군수로 나간 이듬해에도 유배를 경험한 바 있었지만, 지수염필은 60대 중반, 꼭 20년만에 다시 유배객으로 있으면서 이룬 저작이다. 홍한주는 19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독서가이자 문인이었다. 20대부터서유영(徐有英) 등과 시사(詩社)를 갖는데, 그는 당시의 주요 문인들을 망라해서 두루 넓은 교유를 갖고 있다. 아들이 현달해서, 사후에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홍한주의 저작은 지수염필 이외에는 널리 알려진 것이 없었다. 문집두 종이 각각 전하고, 그 하나는 ‘한국문집총간’으로 간행된 정도였다. 문집 내용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 한시에 관한 논문 1편에 불과하다. 지수염필과 문집 이외에 홍한주의 저작으로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인 일기 3책이 있다. 이른바 아사미문고본이다. 필자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과 협약으로 추진한 해제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홍한주의 일기 3종에 대한 해제를 작성한바, ‘문헌과해석’의 요청으로 그 내용을 소개한다.

신유일사(辛酉日史)

계해일사(癸亥日史)

병인일사(丙寅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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