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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동번 이만용 시문집의 이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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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樊 李晩用(1792~1863)의 본관은 전주, 자는 汝成, 호는 東樊·石樵·帶琴樓 등이다. 그의 가문은 7대조 體素 李春英부터 조부 雨念齋 李鳳煥(1710∼1770), 부친 泊翁 李明五(1750∼1836)에 이르기까지 모두 詩로이름을 떨쳤다. 이춘영의 아들인 李時楳는 병자호란 때 金尙憲과 함께척화를 주장한 신하들을 보호하기에 힘썼고,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을 모시고 심양(瀋陽)에 따라가기까지 하였는데, 그의 서자(庶子)인 수장(壽長)의 후손 이봉환, 이명오, 이만용 삼대에 이르러 확고 하게 詩家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점은 당대 명사들의 언급에서도확인할 수 있고,1 이만용 자신도 자기 가문이 文章世家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명오의 동생인 李崇五(1753∼1830)도 시를 잘 지었던 것으로보이며, 이만용의 아들인 李之衡(1810∼1849)도 문학적 재능이 있었는데요절하여 이만용을 매우 안타깝게 하였다. 이만용의 가계3에 대해서는 한국고전번역원의 [동번집]해제(김기빈)와 이현일의 선행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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