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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이봉환(李鳳煥)·이명오(李明五) 부자의 일본 사행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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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신미사행(辛未使行)에 부사서기(副使書記)로 참여한 이명오(李明五)는 당시 나이 예순이었다. 그는 당대 세도정치의 핵심인물이던 있던 풍고(楓臯) 김조순(金祖淳)의 천거를 받아 통신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조순은 이명오에게 “우념공(雨念公)도 일찍이 일본 사행에 참여했었으니, 아들인 그대가 이어 나가야지”라고 권한 뒤 조정에 추천하였다고 한다.1 한편 김조순과 함께 정치의 중심에 있던 심상규(沈象奎)는 사행을 떠나는 이명오에게 전별시를 써주었는데, 그 시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序文)이 있다.

이봉환과 1748년 무진(戊辰) 사행

이명오와 1811년 신미(辛未) 사행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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