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에게는 매우 아끼는 거문고가 하나있었다. 바로 신라(新羅) 경순왕이 쓰던, 사연 깊은 거문고였다. 그 거문고는 조선 중기 화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알려진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을 거쳐 허목에게 돌아갔다. 거문고가 어떤 연유로허목에게 전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만력(萬曆, 1573~1615) 연간 에 이경윤이 관동 지역을 유람하던 당시 우연히 신라 경순왕이 쓰던 거문고를 얻게 되었는데, 곧 그 악기가 허목에게 돌아간 것이라고 이익의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 한 나라의 왕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 했으니 그가 쓰던 물건이 어디엔가 묻혀 있다가 고려를 지나 조선의 한선비에게 돌아간 것이다. 패배의 역사가 안겨주는 허무함이 아프게 전해 진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 쓰던 거문고가 조선의 선비에게 돌아간 사연이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