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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기하원본(幾何原本)』의 조선전래와 그 영향

-천문학자 김영(金泳)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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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천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김영(金泳, 1749~1817)이다. 그는 18세기 조선 정조(正祖) 때 활약한 천재적인 천문학자로 『신법중성기(新法中星記)』,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 신도(新圖)인 『보천가(步天歌)』, 『칠정보법(七政步法)』,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등의 책을 저술하고,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와 적도경위의(赤道經緯儀) 같은 관측기구를 제작하였다. 그는 이러한 업적을 통해 인조(仁祖)때 김육(金堉)의 주장으로 시헌력(時憲曆)을 도입한 이래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 『신법산서(新法算書)』, 『역상고성(曆象考成)』, 『역상고성후편 (曆象考成後篇)』 등으로 이어져왔던 시헌력 따라잡기를 일단락했다고 평가된다. 즉 그의 업적은 『역상고성후편』에 제시된 방법을 완전히 소화하여 시각 제도, 달력, 일식ㆍ월식의 계산 등을 확립한 것이다1 . 그가 한국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가장먼저 김영을 소개한 것은 한국 한문학과 역사학 분야였다. 정민2이 홍길주(洪吉周, 1786~1841)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김영을 소개한 적이 있고, 역사학자인 이도학3이 『이향견문록(異鄕見聞錄)』에 실린 김영의 전기를소재로 하여 김영을 소개하였다. 그 후 정민4, 안대회5, 서신혜6, 허경진7등이 대중서에서 김영을 널리 소개하였다. 이러한 글들은 공통적으로 김영의 천재성과 극적인 등장, 그리고 비참한 최후 등에 주목한 경향 이 있다. 그 이후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김영의 일부 유고가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 수록되어 있음이2010년 조창록에 의해 발견되었다. 필자는 서유본(徐有本)의 『좌소산인 문집(左蘇山人文集)』에 실린 김영의 전기 「김인의영가전(金引儀泳家傳)」에 서술된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홍길주의 『표롱을첨(縹礱乙籤)』,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에 실린 김영에 관한 전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 기』, 『일성록』 등의 관찬 사료, 그리고 김영이 관상감에 재직할 때 발간한 『시헌서』,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서운관지(書雲觀志)』 등에 수록되어 있는 소량의 기록을 모아서 김영의 일생을 연도순으로 정리한 연보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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