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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김종후의 대모산 별서(別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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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에 있는 대모산(玳瑁山, 大母山, 大姥山)은 강남 사람들의 휴식처다. 지금은 별 유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곳에도 조선 시대 명환의 자취가 서려 있다. 정조 연간 산림의 학자 김종후(金鍾厚, 1721~1780)의 집도 그곳에있었다. 김종후는 자가 백고(伯高), 호가 본암(本庵), 혹은 진재(眞齋)다. 청풍 김씨(淸風金氏), 이 집안은 영정조 연간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다. 김종후의 직계는 김계(金繼), 김인백(金仁伯), 김극형(金克亨), 김징(金澄)등으로 내려온다. 김징은 김구(金構, 1649~1704), 김유(金楺) 두 아들을 낳았다. 우의정을 지낸 김구는 후에 김희로(金希魯, 1673~1753), 김재로(金在魯, 1682~1759) 두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도 각기 참판과 영의정을 지냈다. 김희로는 좌의정을 지낸 이세백(李世白)의 딸과 혼인하여 김치만(金致萬,1697~1753)을 낳았고, 김치만은 홍석보(洪錫輔)의 딸과 혼인하여 김종후와김종수(金鍾秀, 1728~1799)를 낳았다. 김재로도 잘난 아들을 두었으니 영의정을 지낸 김치인(金致仁, 1716~1790)이 그의 아들이다. 김유의 아들 역시 고관을 지냈다. 김약로(金若魯, 1694~1753)가 좌의정에 올랐고, 그 아우 김상로(金尙魯, 1702~1766)는 영의정까지 올랐다. 18세기 권력의 정점에는바로 이들 집안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김육(金堉), 김좌명(金左明), 김우명(金佑明), 김석주(金錫冑)로 이어지는 계파 역시 이들 집안이지만, 워낙 이른 선대에 갈려나가 그 거리가 매우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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