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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백운동에 보낸 다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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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는 월출산 옥판봉 남쪽 자락에 위치한 전통 정원으로 행정구역으로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안운마을에 자리 잡았다.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1805년에 처음 월출산 등정을 시도했다가 체력 저하로 중도에 포기한 일이 있었다. 그 후 7년 뒤인 1812년에 한 번 더 월출산 등정을 시도했다. 이때는 여러 제자와 함께 동행한 걸음이었다. 특별히 윤동과초의의 이름이 동행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때도 정상 등정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산이 가파르고 길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산 일행은 백운동 별서 정원에 들러서 하룻밤을 묵었다. 당시 백운동의 주인 이덕휘(李德輝, 1759~1828)가 그를 맞았다. 그는다산보다 세 살 위였다. 그의 부친 이현박(李顯樸, 1735~1819)이 해남 윤씨와 결혼해서 다산의 외가와는 먼 친척 간이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이덕휘와 다산은 금세 친해졌다. 이후 두 사람은 인편에 편지가 자주 오갔고, 당시 9세 소년이었던 이시헌이 다산을 따라 다산초당의 강학에 참여함으로써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된다. 현재 다산이 백운동에 보낸 편지가 여러 통 남아 있다. 백운동 본가에서보관해온 친필이 3통이고, 이시헌이 당시 보관 중이던 간찰들을 재필사해서 묶은 서간집 『시간일람(時簡日覽)』에 3통이 실려 있다. 또 이효우 선생이 소장한 2통을 포함해 모두 8통의 편지가 남아 있다. 아들 정학연이 보낸친필 편지 1통도 따로 전한다. 이 글에서는 이들 편지를 원본 사진과 함께 연대순에 따라 탈초 번역해 정리하고 전후 맥락을 설명하겠다. 2, 3통을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이다.

1. 백운동에 삼가 보냄(謹拜謝狀)

2. 백운동에 보내는 답장(白雲洞省史回敬)

3. 다산초당에서 백운동에 보낸 안부 편지(白雲洞省史敬納 茶山侯狀)

4. 열초의 답장(洌樵謝書)

5. 두릉에서 보낸 안부 편지(斗陵侯狀)

6. 두릉에서 백운동에 보내는 조문 편지(白雲洞廬次侍納 斗陵唁疏)

7. 백운동 효려에 보내는 두릉의 조문 편지(白雲洞孝廬傳納 斗陵唁疏)

8. 이시헌에게 주는 편지(白雲洞 李大雅 書几敬納)

9. 백운산관에 보내는 답장(謹拜謝上 白雲山館經几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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