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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조선시대 예학의 난제들과 학파간 교섭을 통한 예학의 생태계 형성

Formation of an Academic Ecosystem through the Exchange of Schools to Solve the Difficult Problems of Yehak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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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예학은 아주 오래 전 중국에서 제창되고 발전해온 예(禮)라는 문화적 현상과 의례적 체계를 시간・공간상으로 이질적인 조선사회에 착근시키는 과정에서 수행된 학술적 작업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예학자들은 수많은 이질적이고 대립적이며 그래서 난감했던 조건들과 직면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서로 다른 예학적 권위를 갖는 ‘고례(古禮)’와 『가례(家禮)』의 내용이 배치되거나 모순되는 경우, ‘고례’와 『가례』의 문제가 ‘옛날’[古]과 ‘오늘’[今]의 문제와 연결되는 경우, 임금이 제정한 예와 선현들이 제기한 예가 충돌하는 경우, ‘중국’과 ‘한국’의 문화전통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괴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도 예서들이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다양한 변례(變禮)적 상황들에 대처해야 하는 문제 등 난제들이 많았다.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예학은 시기별로 특기할 만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완정성을 갖추어 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15세기에는 국가전례를 정초하는 한편 민간의례에 관한 국가공인의 행례 매뉴얼이 국가주도로 마련되고, 16세기에는 다양한 문답류들이 양산됨과 동시에 훈고와 고증의 방법으로 『가례』의 의미를 명료화하려는 주석서들이 저술된다. 17세기에는 체재와 내용 면에서 훨씬 충실한 행례 지침서들이 만들어지고 언해서들이 등장하며 의례(疑禮)에 관해 독자적으로 정리하고 논증한 예서들이 출현하게 된다. 18세기가 되면 기존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예서들이 학파별로 간행되고, 19세기에는 18세기의 성과를 보완하거나 절요본을 통해 확산시켜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예학 발전 경향은 영남지역 예학에서 먼저 나타났지만, 기호지역 예학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는 오래전 중국에서 제창되고 발전해온 예를 당시 조선이라는 이질적인 시・공간에 착근시키기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만 했던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과정이며, 따라서 특정지역이나 학파를 불문하고 동일한 과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 일각에서는 어느 학파는 가례를 중시했고 어떤 학파는 ‘고례’를 중시했다거나, 어떤 지역에서는 ‘속례’에 관용적이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의리’에 엄격했다는 논조의 주장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접근보다 조선시대 예학 자체가 이런 난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학문적 생태계를 스스로 형성해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고 중요하다. 이에 본 논문은 조선시대 예학이 직면했던 난제들을 검토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학적 생태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영남지역의 퇴계학파와 기호지역의 사계학단 사이에 있었던 구체적인 교섭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Yehak(禮學) is an academic work from the Joseon Dynasty that was conducted to bring the cultural phenomenon and ritual system of Ye(禮), a practice established and developed in China a long time ago, to Joseon society, which differed greatly in time and space. Therefore, Joseon scholars had to face numerous disparate, confrontational, and difficult conditions. The Yehak of the Joseon Dynasty was practiced by scholars in the Yeongnam region. From the 16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the heirs of Toegye(Yi, Hwang) accumulated various but advanced studies on Yehak. Of course, this trend was not necessarily carried out only by scholars in the Yeongnam region. Perhaps it should be regarded as a natural and appropriate process that had to be implemented in order to enter the foreign society of Joseon at that time, an example that had been created and developed in China long prior. Therefore, this process was the same whether in the Yeongnam region or the Kiho region, in the Toegye school or the Yulgok(Yi, Yi) school. Past studies have taken much time and effort to highlight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regions school factions. However, it is much more productive and important to trace the way the “Joseon schools of Ye” itself created an academic ecosystem. Based on this, this paper considers the way the academic ecosystem of the Yehak of the Joseon Dynasty was formed through concrete examples of academic exchanges between the Toegye and the Sagye(Kim, Jang-saeng) Academies.

1. 여는 말

2. 조선시대 예학을 둘러싼 난제들

3. 영남지역 예학의 경향과 특징

4. 교섭을 통한 예학의 생태계 형성

5.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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