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151835.jpg
KCI등재 학술저널

헤이트스피치와 관용

Hate Speech and Tolerance

  • 200

절대주의 시대에서 상대주의 시대로, 동질성에 기초한 사회에서 이질성에 기초한 사회로 변모하면서 관용이 실질적으로 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용은 행해지지 않고, 비관용이 혐오와 증오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류 가치관은 이질성을 포용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그 중 일부는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정치를 벌인다. 시대의 변화는 다름에 대한 관용의 폭을 넓히긴 했지만, 역으로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더 강화시키기도 했다. 가치의 상대성이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기초해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시대(context)가 변함에 따라 관용을 논하는 text가 달라진다. 절대주의 시대에는 (그 당시 법으로도 처벌되지 않는) 물리적 가해를 입히는 증오 범죄(hate crime)를 하지 말라는 촉구로서 관용을 들고 나왔다면, 상대주의 시대에는 (물리적 가해를 입히는 증오 범죄는 당연히 범죄로서 형벌을 받기에) 정신적 가해를 입히는 Hate Speech가 논의의 중심에 선다. 예전과 차이가 있는 건 비주류 쪽의 대응이다. 절대주의 시대에 주류는 절대 강자였고, 비주류는 주류의 관용을 어쩔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이런 가운데 비주류의 투쟁이 있었지만 (대부분 불법으로 탄압받았다) 변화가 있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필요했다. 법제화(法制化)는 느리게 이루어졌다. 상대주의 시대에는 비주류는 더 이상 주류의 관용에 의지하지 않고, 비주류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기초한 ‘승인 투쟁’을 벌인다(오늘날은 정당한 집회와 결사로 보호받는다). ‘평등한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관용보다는 ‘승인’의 차원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이를 권리로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럴 때 소수자 배척과 배제는 비관용을 넘어서, 권리 침해, 평등권 침해가 된다. 1차적 질서 하에서는 승인될 여지가 없지만, 2차적 질서 하에서는 승인될 여지가 생긴다. 승인될 여지가 없거나 부족할 때는 관용의 미덕은 빛을 발하지만, 승인될 여지가 있을 때에는 관용은 (좋은 것임에도) 소극적인 미덕에 그친다. ‘다름에 대한 관용’은 ‘다름에 대한 승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름에 대한 승인이 되고 나면, 이후 관용의 기제는 더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관용’은 승인’과의 관련성 속에서 살펴야 한다.

There is a greater likelihood that tolerance will be practiced while transforming from absolutism to relativism, from a society of primary order to a society of secondary order, from a society based on homogeneity to a society based on heterogeneity. Unfortunately, tolerance is not done, and pessimism appears in the form of disgust and hate. Mainstream of values limit the inclusion of heterogeneity, and some of them engage in disgust and hate of minorities. Changes in the times have broadened the tolerance for differences, but they have also strengthened disgust and hate of minorities. Even in an atmosphere where the relativity of values is recognized, it frequently happened to deny other values based on their own values. As the context changes, the text of tolerance changes. In the era of absolutism there was tolerance as a call to not hate crime(which is not punishable by the law at that time). Hate Speech, which causes mental harm, is at the center of the discussion in the era of relativism. There was a struggle of minority (mostly illegal suppression) but it took a long time and many people’s blood and sweat to change. Legislation has been slow. In the era of relativism, subcultures no longer rely on tolerance, but subcultures themselves make ‘struggle for recognition’ based on their identity(today they are protected by legitimate rallies and associa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equal respect’, it is necessary to acknowledge the other way of life and to recognize it as a right in terms of ‘recognition’ rather than tolerance. In the dimension of minority movement, ‘recognition’ is the priority, ‘tolerance’ is not the priority. People in the majority group acknowledge that minorities can enjoy the same rights as their ‘equal respect’ demands. The virtue of tolerance shines when there is no room to be recognized or when there is a lack of tolerance, but when there is room to be recognized, tolerance is a passive virtue although it is good. ‘Tolerance of difference’ is closely related to ‘recognition of difference’. After approval of difference, the tolerance mechanism becomes more powerful. Today ‘tolerance’ should be examined in relation to ‘recognition.’

Ⅰ. 관용 담론의 시대적 변화

Ⅱ. Hate Speech

Ⅲ. Hate speech와 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