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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조선후기 同姓마을의 형성과 洞約의 성격 변화

慶尙道 丹城縣 法勿也面 洞案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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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는 同姓마을이 급격하게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향촌사회의 지배구조 및 지배조직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洞約(洞契)의 변화였다. 동성마을이 확산됨에 따라 상당수의 동약이 族契化하면서 그 운영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이 글의 목적이다. 조선후기 慶尙道 丹城縣 法勿也面에서는 몇몇 有力 姓貫들을 중심으로 동약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商山 金氏에 의해 동성마을이 형성됨에 따라 법물야면의 동약은 인적인 구성과 지역적 범위에 변화가 초래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세기 초반 무렵 법물야면의 동약을 주도했던 상산 김, 무송 윤, 진주 유씨 등은 단성현의 유력 성관들이었고, 이들 사족가문에 의해 법물야면의 동약이 시행되었다. 법물야면의 동안은 양반층이 중심이 된 上洞案의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1730년대 이후부터는 일부 中庶層의 참여도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상산 김씨의 庶子들을 비롯하여 이천 서씨 등 계층적으로 중서층에 해당하는 새로운 성관이 동안에 기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안 기재인물의 거주지 역시 18세기를 경과하면서 평지촌, 내당촌으로 집중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평지촌, 내당촌은 상산 김씨의 동성마을이 형성되었던 촌락이었고, 법물야면의 동약을 주도했던 성관 중에서 동성마을을 형성했던 성관은 상산 김씨가 유일하였다. 상산 김씨의 동성마을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법물야면의 동약은 상산 김씨의 족계적 성격으로 변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선후기 법물야면의 동약 시행과 관련된 자료로 18세기 중반에 작성된 『洞內穀物息利有司姓名冊』과 19세기 전반에 작성된 『許廳案』이 현전하고 있다. 『有司姓名冊』과 『허청안』에 기재된 인물들은 법물야면의 동약을 운영하는 실무적인 역할을 했던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신흥 세력들로서 계층적으로는 中庶層에 속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성관은 경주 최씨였다. 경주 최씨는 상법촌에 집거하며 동약 운영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성장을 이루었던 신흥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들어 상동안과 별도로 허청안이 작성되고, 여기에 법물야면의 신흥세력이었던 경주 최씨가 대거 기록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19세기 법물야면의 동약은 18세기와는 달리 신흥 세력들을 『허청안』으로 분리하여 그 명부를 작성하였다. 이는 19세기 이후 신분제적 위기를 느낀 양반사족들이 상하합계에서 상계, 하계를 분리하려는 경향이 법물야면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8세기 이후 평지촌, 내당촌을 중심으로 동성마을을 확대시켜 갔던 상산 김씨는 법물야면의 동약을 족계화하였고, 새롭게 성장한 신흥 세력과 일반 촌락민을 허청안과 하동안으로 분리하면서 신분제적 질서를 정비하는 동시에 이들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유지해 나가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Dongyak (Village Covenants) was implemented centered on a few influential families in Beommurya-myeon, Danseong-hyeon, Gyeongsang-do Province. However, with the formation of consanguineous villages by the Sangsan Kim family, the Dongyak in Beommurya-myeon faced many changes in terms of the population composition and regional scope. The Sangsan Kim family, Musong Yun family, and the Jinju Yu family, who led the Dongyak in Beommurya-myeon during the early 18th century, were major influential families in Danseong-hyeon. Although the Dongan (list of names) from Beommurya-myeon was mainly a list of superior names focused on the noble class, it started to include some names from the middle class from the 1730s. The residential areas of those who were listed in the Dongan also became focused in the Pyeongji-chon and Naedang-chon areas during the course of the 18th century. Pyeongji-chon and Naedang-chon were areas where the consanguineous villages of the Sangsan Kim family were formed. Among those who have led the Dongyak in Beommurya-myeon, the Sangsan Kim family was the only family who formed consanguineous villages. With the expansion of the consanguineous villages of the Sangsan Kim family, the Dongyak in Beommurya-myeon seems have changed to represent the family tree of the Sangsan Kim family. The Sangsan Kim family, who had expanded the consanguineous villages centered on the Pyeongji-chon and Naedang-chon areas from the 18th century, transformed the Dongyak in Beommurya-myeon into its family tree. The family also classified newly rising powers and general residents into Heocheongan and Hadongan to organize the status-based order, and intended to maintain their controlling power.

Ⅰ. 머리말

Ⅱ. 洞案 구성원의 姓貫 및 거주지 분포

Ⅲ. 商山 金氏 同姓마을의 형성과 洞案 구성원의 변화

Ⅳ. 신흥세력의 洞約참여와 許廳案의 작성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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