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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룩셈부르크(Lucemburská) 가의 카렐 4세(Karel IV)

Charles IV of the House of Luxem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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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년 11월 26일 루트비히 4세의 대립 왕으로 등극한 카렐 4세는 다음해인 1347년 루트비히 4세가 급사함에 따라 단독왕의 지위를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이 인물은 1347년 9월 2일 체코 왕국의 위정자로 등극했다. 이후부터 카렐 4세는 체코 왕국의 지위 격상에 필요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그것은 그가 체코 왕국의 고유 영역인 보헤미아 지방과 복속지인 모라비아 후작령, 슬레슈코 공국, 그리고 고지 루사티아를 포함시킨 체코 왕국출범에 필요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데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카렐 4세는 결혼정책을 통해 체코 왕국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주력했고 거기서 가시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즉위 초부터 왕권강화를 모색하던 카렐 4세는 귀족들의 위상 역시 제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가시화시킬 수 있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강구했다. 따라서 그는 1347년 겨울부터 독일 왕의 권위를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재해석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다음해인 1348년 4월 7일 모두 12개의 법령을 발표했는데 거기서는 주로 위정자의 제 권한 및 위상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었다. 체코 왕국에서 자신의 권한증대에 필요한 법적토대를 마련한 카렐 4세는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이 왕국의 위상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기 시작했다. 1349년 7월 25일 아헨에서 다시 독일 왕으로 등극한 카렐 4세는 1355년 1월 6일 로마에서의 대관식을 통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다음해인 1356년 카렐 4세는 유명한 ‘황금칙서’를 공포하여 체코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체코 왕국의 군주가 제국 내 일곱 명 선제후들 중에서, 성직계의 대표를 제외한 세속 권력의 대표자격, 즉 제국 내에서 일인자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카렐 4세는 문예부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프라하는 그의 재위 기간 중에 유럽문화의 중심지로 등장했다. 이 당시 카렐 4세는 신성로마제국 내 다른 독일계 국가들보다 국가 체제를 먼저 확립한 체코 왕국을 제국의 중심 국가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제국 수도, 즉 프라하를 크게 확충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1348년 신시가지가 건설되었고 기존의 스타레메스토와 말라스트라나에는 대저택과 궁전 건설 등이 활발히 진행되어 프라하는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이렇게 재위 중 체코 왕국의 위상을 증대시키려던 카렐 4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었고 그것에 대해 반론제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Charles IV was born to King John and Queen Elizabeth in Prague. He was originally named Wenceslaus(Vaclav), the name of his materal grandfather, King Wenceslaus II. He chose the name Charles at his confirmation in honor of his uncle, King Charles IV of France, at whose court he was resident for seven years. He received French education and was literate and fluent in five language: Latin, Czech, German, French, and Italian. In 1331 he gained some experience of warfare in Italy with his father. From 1333 he administered the lands of the Bohemian Crown due to his father’s frequent absence and deterriorating eyesight. In 1334, he was named Margrave of Moravia, the traditional title for heirs to the throne. Charles backed the wrong side in the Hundred Year’s War, losing his father and many of his best knights at the Battle of Crecy in August 1346, with Charles himself escaping wounded from the field. On 11 July 1346, prince-electors elected Charles king of the Romans in opposition to Emperor Louis IV. Charles was crowned on 26 November 1346 in Bonn. Charles, having made good use of the difficulties of his opponents, was again elected in Frankfurt 17 June 1349 and re-crowned at Aachen on 25 July 1349. He was soon the undisputed ruler of the Empire. Gifts or promises had won the support of the Rhenish and Swabian towns; a marriage alliance secured the friendship of the Habsburg; and an alliance with Rudolf II of Bavaria, Count Palatine of the Rhine, was obtained when Charles, who had become a widower in 1348, married his daughter Anna. Outside of Prague, Charles attempted to expand the Bohemian crown lands, using his imperial authority to acquire fiefs in Silesia, the Upper Palatinate, and Franconia. The latter regions comprised ‘New Bohemia’, a string of possessions intended to link Bohemia with the Luxemburg territories in the Rhineland. The Bohemian estates were not, however, willing to support Charles in these ventures. When Charles sought to codify Bohemian law in the Majesty Carolina of 1355, he met with sharp resistance. After that point, Charles found it expedient to scale back his efforts at centralization. The reign of Charles IV was characterized by a transformation in the nature of the Empire and is remembered as the Golden Age of Bohemia. He promulgated the Golden Bull of 1356 whereby the succession to the imperial title was laid down, which held for the next four centuries. He also organized the states of the empire into peace-keeping confederation. Prague became the capital of the Holy Roman Empire during the reign of Charles IV. The name of the royal founder and patron has been preserved in many monuments and institutions, for example Charles University, Charles Bridge, Charles Square


Ⅰ. 카렐 4세의 영역확장정책

Ⅱ. 카렐 4세의 왕권강화정책

Ⅲ. 카렐 4세의 문예장려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