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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경산 지역 고대 정치체의 성립과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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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경산 지역 임당유적 발굴 자료 등에 대한 기왕의 분석을 검토함으로써 이 지역에 지역 정치체인 진변한 國이 성립할 즈음의 양상과 그것이 겪은 변천, 그리고 신라 마립간기의 동향을 지역사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임당유적의 초기 목관묘군 분포 정형을 보면 서기전 2세기대 무문토기 혹은 전국계 철기 출토 목관묘는 임당 구릉의 동서중앙부 각각에 다수의 군을 이루고 있으며 구조와 공반 유물로 보건대 서부 구릉의 묘들은 유이민 계통이 주류인 반면 중앙부는 재지계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 집단의 수는 45개이다. 서기전 1세기대 와질토기 출토 목관묘군은 크게 보아서는 이전보다 세 구릉별로 좀 결집하는 양상을 띠지만 축조 집단의 실제 수는 5개를 넘는 듯하다. 그러나 서기 2세기 중엽 즈음 개시되는 목곽묘 축조 단계에서는 나중에 고총군이 조영되는 동중앙서부 구릉에 하나씩 세 개의 묘군을 이루고 조영됨으로써 무덤 축조 집단이 이 시기부터 고총 단계까지 그대로 이어짐을 시사한다. 임당유적의 신라 마립간기 세 고총군 중에서 서부 구릉 임당동고총군의 축조 집단은 신라 국가가 이들과 목곽묘 단계 이래로 주도 세력이었던 구릉 중앙부의 조영동고총군 축조 집단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지원함으로써 성장한 세력으로 추정된다. 경산 지역 정치체의 읍락 중 하나의 고분군인 신상리고분군에 대대적으로 조영된 경주 지배층의 묘제인 적석목곽묘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押督 반란에 따른 토평 및 徙民에 결부지어 생각할 때 그 사민 이후 어느 시점에 경주로부터 이주한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다른 읍락 중 하나의 고분인 5세기 전반의 북사리1호분에서 출토된 은제 과대는 신라 국가에 의해 중심 읍락 지배층에만 주어지던 신라식 복식품이 그 즈음부터 주변 읍락에도 주어지게 된 것을 말하며 이는 그때부터 신라 국가의 지배력이 주변 읍락에도 서서히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하였음을 시사한다.

I. 머리말

II. 임당유적 분묘의 시대별 분포 정형

III. 지역 정치체 국 성립기의 경산

IV. 진·변한 국 단계의 경산

V. 신라 마립간기 경산 지역 정치체의 동향

VI.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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