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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미군정청 법률고문보 길리암(Richard D. Gilliam, Jr.)과 제헌헌법 제9조 체포・구금적부심의 의미

Richard D. Gilliam, Jr., Assistant Legal Adviser of the Department of Justice in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 Original Intent of the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Arrest or Detention of Article 9 in the Constitution of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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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미군정청 법률고문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몇 가지 법안이 존재한다. 헌법안인 우드월안, 민법안인 로빈기어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길리암안 등이 그것이다. 법안 작성자 중 우드월과 로빈기어에 대해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에 비해 형사소송법 개정안 중 하나인 길리암안을 작성한 길리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 글은 해방공간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 법원조직법안 등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길리암이 누구인지, 해방공간에서 어떠한 역할과 활동을 했는지,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 특히 제17조, 제18조의 구속적부심 도입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등을 중심으로 제헌헌법 제9조의 체포・구금적부심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길리암(Richard D. Gilliam, Jr.)은 1897년에 태어나서 1986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1924년에 버지니아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후, 17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는 미육군으로 참전하였다가 1946년에 대위로 제대한 후, 미군정청 법원연락공무원으로 한국에 와서 1948년까지 2년 동안 근무하였다. 1948년 초에는 미군정청 사법부 차장 겸 법률고문보를 담당하였다. 그 때 그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법원조직법안 등의 작성에 관여하였다. 제헌헌법 제9조는 체포・구금적부심을 규정하고 있다. 체포・구금적부심은 1948년 3월 20일(4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함)에 인준된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형사소송법의 개정) 제17조, 제18조가 헌법규범화 된 사례로, 제헌헌법 제9조의 체포・구금적부심의 의미는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와 동 법령 제17조, 제18조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와 관련하여 현재 5개 법안이 존재한다. 이 중 구속적부심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길리암안 단계에서이다. 길리암에 의하면, 미군정청 사법부 미국인 법률가들이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 제17조에 Habeas Corpus의 원리(구속적부심)을 삽입하였다고 한다. 즉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 제17조, 제18조의 구속적부심은 영미법의 Habeas Corpus가 번역, 변형되어 해방공간에 도입된 것이다.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의 5개 법안과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가 제정되는 과정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인 법률가들이 영미법계의 Habeas Corpus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무시한 단계이다. 대법원안과 대법원안에 대한 대검찰청 대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영미법계의 Habeas Corpus를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도입한 단계이다. 길리암안,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원안, 사법부안에 대한 대검찰청 대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영미법계의 Habeas Corpus 원형을 이해하고, Habeas Corpus를 해방공간의 실정에 맞게 변형하여 도입한 단계이다. 1948년 3월 20일에 인준된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6호이 이에 해당한다. 길리암안을 통해 이 땅에 제한적으로 도입된 영미법계의 Habeas Corpus는 대륙법계의 토양 속에서 인신 보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다가 2007년 12월 21일 인신보호법 제정으로 Habeas Corpus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법 제2조 제1항 단서의 위헌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체포・구금적부심의 원의를 고려하여 법제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There are some drafts made by legal advisers of the Department of Justice in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USAMGIK): Woodall’s draft for constitution, Lobingier’s draft for civil law, Gilliam’s draft for criminal procedure etc. Charles Sumner Lobingier(1866-1956) and Emery Johnson Woodall(1891-1963) are well known as drafters in USAMGIK. But there is only little information of roles and activities of Richard Davenport Gilliam, Jr. in USAMGIK. This article is to study who he is, his roles and activities in USAMGIK, his roles to make Article 17, 18 of the Ordinance No. 176 of South Korean Interim Government, and original intent of the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Arrest or Detention of Article 9 in the Constitution of 1948 etc. Gilliam was born in 1897 and died in 1986. He practiced law for 17 years after graduating from Virginia law school. He volunteered as a private in the U.S. Army and was discharged in 1946 with the rank of Captain. He served as a court liaison officer in USAMGIK from 1946 to 1948 after his discharge. He had been a Deputy Director and an Assistant Legal Advisor of the Department of Justice, drafted Ordinance No. 176(Changes in Criminal Procedures) and Ordinance No. 192(Court Organization Law) etc. during two years in USAMGIK. The first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Restraint(Korea Habeas Corpus) was provided in the Article 17, 18 of the Ordinance No. 176 of South Korean Interim Government that was approved by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or in Korea on 20 March 1948 and was effective on 1 April 1948. It was introduced in Article 9 of the Constitution of 1948. Then, the original intent of the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Arrest or Detention of Article 9 in the Constitution of 1948 should be found in the process of making the Ordinance No. 176 and Article 17, 18 of the Ordinance No. 176. Now, there are five drafts related to the Ordinance No. 176. The first draft of them that the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Restraint was stated by was Gilliam’s draft. Gilliam said that American lawyers in the Department of Justice inserted the principle of Habeas Corpus in Article 17 of Ordinance No. 176. Habeas Corpus of Anglo-American legal system was accepted into the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Restraint in South Korea through translation and transformation. The acceptance of Habeas Corpus of Anglo-American legal system in South Korea were proceeded by three steps. First, Habeas Corpus was ignored or was not recognized by Korean lawyers. Second, Habeas Corpus was understood and accepted limitedly. Third, Habeas Corpus was understood as the original form and transformed into being appropriate for the situation of South Korea. Gilliam’s draft was proceeded by second step. Habeas Corpus of Anglo-American legal system accepted by Gilliam’s draft didn’t perform a role in continental legal system. Even though the Habeas Corpus Act was made on 21 December 2007, the constitutionality of Article 2 Section 1 of the Habeas Corpus Act is still debated. This problem should be solved by the original intent of the Review of the Legality of the Arrest or Detention of Article 9 in the Constitution of 1948.

Ⅰ. 머리말

Ⅱ. 길리암의 생애

Ⅲ. 길리암안 이전 Habeas Corpus 논의

Ⅳ. 길리암에 의한 구속적부심 논의

Ⅴ. 제헌헌법 작성 과정에서의 논의와 체포 구금적부심의 의미

Ⅵ.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