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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중국 전통과 서양 근대의 불안한 공존

당종해(唐宗海)와 중서회통의경정의(中西匯通醫經精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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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세계에 전해진 서양 근대 의학의 수용 여부는 현실화되는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근대국가의 건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었다. 1774년 일본의 의사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가 번역한 해체신서(解體新書)가 상징하는 것처럼, 일본은 이른 시기에 서양의 의학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메이지유신으로 상징되듯 일본인에 의한 주도적인 서양화가 진행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반면 중국에서는 홉슨의 저술, 서양 선교사들의 의료와 교육활동, 일본에의 영향 등 타의적인 요소가 많았다. 또한 서양의학에 대한 전통의학계의 반발이 매우 강하였고, 그 갈등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19세기 후반 중국의 주류 정치·사상계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이나 구본신참(舊本新參) 동도서기(東道西器) 등의 구호를 내걸고, 중국적 전통 사상체계 안에서 서양의 발전된 과학기술이나 문물의 일부를 채용함으로써 국가 건설의 기틀을 마련하자고 주장하였다. 당종해가 남긴 중서회통의경정의(中西匯通醫經精義)는 당시 사상계의 경향인 중체서용과 같은 논의를 의학의 범주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당종해는 중국의 전통의학을 중심에 놓고 서양의 근대의학으로 보완·종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중의의 모태라고 할 내경(內經)의 주석을 통해서 근대적인 의미로써의 중의학을 재정리하고, 자신이 중의의 핵심으로 여긴 기화(氣化)의 개념을 서양의 학문으로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해부학으로 대변되는 서양의학을 이른바 생기(生氣)라는 관점에서 무용론을 주장하던 논리와는 다르게, 서양 학문을 통한 인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열었다. 중서회통의경정의에서 제시된 방광(膀胱) 내의 기화 작용, 삼초(三焦)에 대한 색다른 해석 등이 그것이었다. 전통의학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서양의 학문을 일정하게 수용하려는 그의 태도는 식민지라는 정치적 상황에서 영향력이 축소되던 조선의 한의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당종해가 서양 학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던 한계는 조선의 의학자들에게 지속해서 영향을 주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서양의 학문을 통해 중의학으로 명칭되는 동아시아 전통의학을 재정립하려는 그의 시도는 동서의학이 병존하는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현재까지도 의미를 갖는다.

The acceptance of Western modern medicine delivered to the East Asian world was linked to the question of what direction to lead the construction of modern countries against the Western imperialism that became a reality. As symbolized by the Kaitai Shinsho(解體新書) which was translated by Japanese doctor Sugita Kenpaku(杉田玄白) in 1774, Japan accepted Western medicine in earnest at an early stage, and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leading Westernization represented by the Meiji Restoration(明治維新). On the other hand, in China, there were many involuntary factors such as Hobson’s writings, Western missionaries’ medical and educational activities, and Japan’s influence. Also, the traditional medical community’s resistance to Western medicine was very strong, and the conflict lasted for a long time. In the late 19th century, China s mainstream political and ideological leaders advocated the establishment of a foundation for national construction by employing some of the western advanced science and technology or culture within the traditional Chinese system of thought, with slogans such as ‘Chinese substance and Western applications(中體西用)’, ‘using tradition as the base and new western civilization as a reference(舊本新參)’ and ‘Eastern way and Western instruments(東道西器)’. The book, Zhongxi huitong yijing jingyi(中西匯通醫經精義) wrote by Dang Jong-hae(唐宗海), i s an example of how t he ‘Chinese substance and Western applications’ was applied in the medical category. Dang jong-hae intended to supplement and integrate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with modern Western medicine. He tried to re-establish Chinese medicine in the modern sense through the annotations of the Neijing(內經), which is the origin of Chinese medicine, and to p rove the concept of ‘change o f Qi(氣化)’ which he regarded as the core of Chinese medicine, with Western sciences. Thus, unlike the logic of insisting on uselessness of Western medicine which is represented by anatomy in the view of so-called ‘vitality(生氣)’, he proposed a new understanding of the human body through Western learning. It was They included the evaporation action in the bladder and a new interpretation of Tripple Energizer(三焦). His attitude of insisting on traditional medicine but at the same time accepting Western studies steadily influenced the oriental medical doctors of Joseon, which had been losing their influence in the political situation of colonialism. However, the limitation that Dang jong-hae did not fully understand Western studies was difficult to continue to influence Joseon’s medical doctors. Nevertheless, his attempt to redefine traditional medicine of East Asia through Western learning, is still meaningful to this day in the East Asian world where East and West medicine exists.

1. 머리말

2. 당종해의 삶과 중서회통론

3. 중서회통론의 학문 배경

4. 『중서회통의경정의』의 내용과 특징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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