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커버이미지 없음
KCI등재 학술저널

한국전쟁기 북한의 점령정책과 조선인민의용군의 동원

미군 포로심문보고서를 중심으로

  • 45

한국전쟁기 조선인민의용군(이하 인민의용군)으로, 일반적으로 북한이 남한을 점령했을 때, 점령지역에서 강제 또는 자원의 형식으로 정규군에 편입된 병력을 말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민의용군은 시기적으로는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후, 지역적으로는 38선 이남 북한이 점령한 남한지역에서 징집된 민간인이다. 그리고 분석을 위해 국내에 수집되어 있는 포로심문보고서를 모두 검토하여 확인 가능한 604명을 선별했다. 남한 점령지역에서의 본격적인 인적 동원은 점령 직후 실시되었다. 특히 북한이 1950년 7월 17일 군사동원사업을 강화를 위해, 군사위원회 군사동원부를 군사위원회 군사동원국으로 승격하고, 점령지역에도 이를 설치하면서 인민의용군은 남한점령 지역 ‘인민’의 자원 형식보다는 북한 영토 지역 공민의 ‘동원’ 형식으로 징집되었다. 대표적인 동원 방식은 대규모 집회를 통한 징집이었다. 이것은 특히 학교나 공장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따라서 인민의용군 중에는 농민, 학생, 노동자가 많았고, 대다수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었다. 한편, 지방이나 농촌에서는, 마을 회의나 모임을 통해 입대 대상이 결정되었다. 동원된 인민의용군의 대다수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거친 후, 보충병으로 전선에 배치되었다. 또 일부는 빨치산이나 첩보요원 등으로 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인민의용군의 규모는 최소 10만여 명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This article studied the Cho-Sŏn-In-Min-Ŭi-Yong-Kun(Korean People’s Volunteer Army, KPVA) that was transferred to regular army from the occupied territory in the form of forced or voluntary recruitment when North Korea occupied South Korea. For this, 604 persons were selected from the US Army’s Prisoner of War(POW) Interrogation Reports in Korea and analysis were made focusing on those. The typical mobilization method was recruitment through large-scale rallies. This was especially conducted targeting students and laborers in schools or factories. Meanwhile, in local or rural areas, KPVA enlistment targets were also decided in town meetings or gatherings. Mobilized people were placed in respective army units after undergoing simple physical examination. Majority of them were recruited as regular army’s replacements. Some were also used as guerrillas or intelligence agents. The scale of KPVA mobilized in this manner is estimated to be more than 100,000 people.

1. 머리말

2. 북한의 점령지역 동원정책

3. 조선인민의용군의 운용과 규모

4. 맺음말

참고문헌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