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커버이미지 없음
KCI등재 학술저널

1910년대 경북지역 獨立義軍府의 조직과 民團組合

The Organization of the Doklibuikunbu and Mindanjohap at Gyeongbuk Area in 1910s

  • 11

경북지역 독립의군부는 1913년 3월(음) 崔旭永이 독립의군부 辭令書를 받으면서 조직되었다. 최욱영은 이강년 의진에 軍師將으로 참여했다. 따라서 이강년ㆍ이인영ㆍ허위와 의병활동을 벌였던 이들 다수가 독립의군부에 참여했다. 이처럼 경북지역 의병전쟁은 독립의군부가 조직되는 배경이었다. 최욱영은 사령서를 받은 후 경북 안동ㆍ예안, 강원도 강릉, 충북 제천 일대에서 부원들을 규합했으며, 화승총 등을 구입하며 의병봉기를 추진했다. 독립의군부의 목적인 擧兵을 위해서였다. 경북지역 독립의군부는 1915년 4월 최욱영이 체포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피체되지 않은 이들이 민단조합이란 단체명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단체명만 민단조합이라 했을 뿐 활동은 경북지역 독립의군부 활동이었다. 이동하가 귀국한 후 조직한 단체가 ‘朝鮮獨立義軍’이라는 점, 민단조합이 조직된 후에도 독립의군부 관제인 管見 을 따르고 있다는 점, 민단조합이 독립의군부와 같이 勅命의 형식으로 사령서를 교부하고 동지들을 규합했다는 점 등을 통해 확인된다.

The Doklibuikunbu at Gyeongbuk Area was organized on March, 1913 when Choi, Uk Young had received 「Saryeongseo」 due to his career of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Choi, Uk Young gathered his men and swords for armed uprising which was the purpose of The Doklibuikunbu. he collected war funds Andong, Gyeongbuk·Gangneung, Gandwon·Jecheon, Chungbuk. The Doklibuikunbu at Gyeongbuk Area was at a squeeze when Choi, Uk Young was arrested on April, 1915, but the rest continued their activities with the name of the Mindanchohap. but the name of the Mindanchohap was nominal and their activities was those of the Doklibuikunbu. It could be verified by the fact that they organized the Chosundoklibuikun, they used the 「Kwangyun」, government system of the Doklibuikunbu, and they gathered people by Saryeongseo as the Doklibuikunbu did.

1. 머리말

2. 경북지역 독립의군부의 조직과 활동

3. 경북지역 독립의군부와 민단조합과의 관계

4. 맺음말

참고문헌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