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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3·1운동, 국가의 기억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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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韓日關係史料集』을 편찬하여 3·1운동의 기록을 정리하고 통계를 집계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인 3·1운동을 정부가 조사하고 최초로 기록화·통계화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 저본으로 하여 임시정부와 관련이 있는 인사인 박은식의 『韓國獨立運動之血史』와 김병조의 『韓國獨立運動史略 上篇』이 저술·출판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2년 3·1운동 피살자를 조사하여 『三一運動被殺者名簿』를 작성하였다. 이 명부는 해방된 정식 정부에서 진행된 것으로서, 정부가 3·1운동을 기록한 두 번째 산물이다. 『韓日關係史料集』과 『三一運動被殺者名簿』는 현실적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 급조되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韓日關係史料集』은 국제연맹에 제출할 목적으로 84일 만에 완료하였고, 『三一運動被殺者名簿』는 한일회담 2차 회의 청구권 대비용으로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단시일에 조사를 마쳤다. 1919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임시정부의 국내 조사가 불가했던 상황이나, 1952년 전쟁의 와중에서 38선 이남의 면사무소 행정조직 가동이 가능한 지역에서만 시행된 조사라는 상황의 한계는 완전하고 철저한 통계를 산출할 수 없게 하였다. 따라서 두 통계는 특별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조사 상황이 여의치 않은 조건에서 단기간에 진행된 불철저·불완전한 조사 결과였다. 『三一運動被殺者名簿』의 피살자 수는 『韓日關係史料集』 등의 통계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인원이다. 그러나 『韓日關係史料集』 등이 부정확한 숫자만 통계로 제시한 반면, 『三一運動被殺者名簿』는 순국 당시 주소·성명·순국 당시 연령·순국 장소·순국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s published 『韓日關係史料集』 in 1919 to organize records and gather statistics regard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This is significant in a sense that it was the first documentation and statistics conducted by the government in regards to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52, the Republic of Korea government has created 『三一運動被殺者名簿』 by investing the victims of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This list is conducted by the government after independence, which was the 2nd initiative taken by the government regard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韓日關係史料集』 and 『三一運動被殺者名簿』 are in common ground in a sense that both were improvised by realistic purposes and necessity. 『韓日關係史料集』 had completed in 84 days to be submitted to the League of Nations and 『三一運動被殺者名簿』 had been completed in less than one month to prepare for 2nd Korean-Japanese Conference. In 1919,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could not conduct domestic survey under Japanese occupation and in 1952, the survey was limited to only administrative organizations located at southern part of 38th parallel. Therefore, it was impossible to manufacture complete and accurate statistical data. As a result, these two statistics were incomplete and inconclusive which had been conducted in short period under unfavorable conditions, improvised to be used for political purposes. These two surveys and statistics are highly significant as the memories and records of the government regard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The number of victims stated in 『三一運動被殺者名簿』 is extremely below the number specified in 『韓日關係史料集』. However, unlike 『韓日關係史料集』 which provided inaccurate statistics, 『三一運動被殺者名簿』 described in detail about the martyrs’ address·name·age·location·circumstances, which provides significant values as historical materials.

1. 머리말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3·1운동 조사와 『韓日關係史料集』

3. 『韓日關係史料集』을 이용한 저술

4. 해방 후 정부의 피살자 조사와 『三一運動被殺者名簿』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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