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의 대용연료차량 보급 정책과 운용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Making and Operating Policy to Supply Alternative Fuel Vehicles after the Sino-Japanese War : Focusing on Charcoal Gas·Acetylene Gas Generators for Vehicles
중일전쟁 이후 조선은 각종 증산정책이 강제되면서 동력연료인 휘발유 소비가 급증하였다. 하지만 휘발유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목탄과 카바이드를 대용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용 가스발생장치가 주목받게 되었다. 이에 1938년 총독부는 설치비의 최고 절반의 금액을 보조하였다. 하지만 장치의 보급은 개발이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었고, 보조금 지급 대상의 80%가 중도 탈락하는 등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쟁의 확대와 영미에 의한 석유금수조치 이후 사용은 급격히 늘어났다. 대용연료로써 목탄과 카바이드 수요도 크게 증가하였다. 목탄은 차량용으로 사용될 경우 안정적인 주행을 위해 일반용과 달리 일정한 규격의 제품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신탄 생산 역시 중요했기에 차량용 규격 목탄은 생산되지 않았다. 카바이드도 아세틸렌 관련 공업 수요와 더불어 차량용 수요가 폭증하였다. 물론 이것은 휘발유 공급이 정상적이라면 생겨나지 않을 수요였다. 결국 휘발유 소비억제를 위해 도입된 가스발생장치와 대용연료였지만 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이들의 수급 역시도 기형적으로 변하였다.
After the Sino-Japanese War, Chosun was forced to operate policy to increase all kinds of production, which did increase the consumption of gasoline, rapidly. As it was getting harder to supply gasoline, however, gas generators for vehicles using charcoal or carbide as alternative fuel came to be noticed. Consequently, in 1938,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supported with the amount equivalent to half the installation cost maximum. But since the supply of those devices was promoted while their development was not completely done yet, they faced total disaster as 80% of the products subject to the subsidies were dropped out in the middle. Demand for charcoal and carbide as alternative fuel increased greatly, too. Of course, this must not have been there if gasoline had been normally supplied. Although gas generators and alternative fuels were induced to suppress gasoline consumption, as the war got severer, the demand and supply of them, too, changed abnormally.
1. 머리말
2. 차량용 가스발생장치 도입과 보조금 정책
3. 전쟁 격화에 따른 사용 확대와 제조업체 통제
4. 가스발생장치용 목탄과 카바이드의 증산과 배급 실태
5.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