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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한말 도일유학생들의 현실 인식과 근대국가론

≪共修學報≫와 ≪洛東親睦會學報≫ 분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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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도일유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여러 유학생 단체가 설립되었고, 대한공수회와 낙동친목회 역시 이 시기에 결성된 유학생 단체였다. 두 단체는 각각 ≪공수학보≫와 ≪낙동친목회학보≫를 발행했다. 유학생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탈, 즉 ‘서세동점’을 언급하며 대한제국 역시 ‘국권’ 상실의 위기, ‘국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유학생들은 ‘문명개화’를 이루고 근대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시대적 과제로 여겼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효율적인 개혁 방법이자 급선무는 근대적 교육, 특히 ‘국민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국민교육’을 강조했던 것은 근대국가의 구성 요소 중 ‘국민’ 형성에 가장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두 단체의 유학생들의 국가론에서는 같은 시기 국내 지식인들이나 여타 유학생 단체의 국가론에서 자주 등장했던 입헌에 관한 논의가 등장하지 않았다. 유학생들의 국가론은 주로 국가 구성의 요소, 그중에도 ‘국민’을 형성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국가구성원들에게 ‘국가사상’, ‘애국심’, ‘조국정신’ 등을 갖춘 ‘국민’이 될 것을 요구했다.

The Taehan Gongsuhoe and the Nakdong Chinmokhoe were organized after the outbreak of the Russo-Japanese war and issued “Gongsu Hakbo” and “Nakdong Chinmokhoe Hakbo” respectively. The students of two organizations recognized the situation of the Korean Empire as a “crisis”. However, they did not directly address the invasion of Japanese imperialism, which was actually causing the ‘crisis’ of the Korean Empire. The students regarded establishing a modern nation as a task of the times and their duty by pursuing modern reforms. They insisted that the most effective way of reform and urgency was to conduct modern education, especially ‘national education’. In addition, there were no discussion about the constitution that often appeared in the theory of the state of domestic intellectuals and other student organizations in the arguments of two organizations. Their theory of the state was mainly focused on the issue of forming the ‘nation’. They demanded that the people of the nation be ‘citizens’ with ‘national thought,’ ‘patriotism,’ and ‘spirit of the fatherland.’

1. 머리말

2. 도일유학생의 증가와 유학생 단체설립

3. 유학생들의 현실 인식과 근대국가론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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