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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현황과 특징

A Study on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Prisoner at Seodaemun Pris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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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의 현황과 특징을 분석하였다. 서대문형무소 수감자에 대한 명확한 자료나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이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이다. 이 카드는 6,259장이 보존되어 있으며, 중복 인물을 제외하면 4,837명이다. 카드의 연번 분석을 통해 1908~1945년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는 94,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카드를 분석한 결과 함경도 출신 인물이 31.1%로 가장 많았고, 지역 또는 가족단위의 수감자들이 확인되었다. 지역, 가족, 학교 단위 등 사회 관계망 속에서 독립운동 참여자들의 연대가 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감자 연령대는 20대 청년층이 57.5%로 절반 이상을 상회하여 청년층의 식민지 모순 자각과 이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처벌은 ‘엄벌주의’적인 형태로 매우 엄격히 집행되었다. 죄명은 분석 대상 수감자의 87.73%가 소위 ‘사상범’인 치안유지법, 보안법, 소요, 출판법 위반 등의 혐의이다. 이들이 독립운동으로 수감되었던 것이다. 형량은 1~4년 사이가 52.65%였고, 10년 이상의 장기수들과 치안유지법으로 인한 사형수도 있어 극단적인 처벌이 있었다. 1940년대부터는 국가총동원법 위반 수감자들이 급증하였고, 이들은 집행유예없이 74.94%가 6개월 이상 실형을 언도받았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평범한 식민지‘民’을 범죄자로 몰아갔던 것이다. 일제는 식민통치에 반대하거나 그들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한 엄격한 감시와 처벌을 통해 식민지 권력을 유지해 나갔다. 이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식민지 감옥, 대표적으로 서대문형무소였던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prisoners at Seodaemun Pris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ocusing on the analysis of prisoner record card. Total 6,259 cards are preserved and the number is 4,837 if overlapped cases are excluded. As a result of analysis, those from Hamgyeong-do accounted for the majority with 31.1% and there were prisoners from region and family unit. The independent movement formed alliance of participants through social network such as region, family and school. As for the age level of prisoners, those at their 20s were 57.5%, which demonstrated the awareness of contradiction of the colonial era by the youth together with the movement to transform it. As for the crime, 87.73% of the prisoners were political offenders such as the offenders of maintenance of the public order act, security act, disturbance, printing act and they were independent movement activists. As for the sentence years, 1~4 years accounted for 52.65% and there were extreme punishment cases such as long-term prisoners of over than 10 years and capital punishment by maintenance of the public order act. From 1940 onwards, the prisoners who offended the national mobilization act increased rapidly. 74.94% were sentenced for actual prison sentence for more than 6 months without probation. The Japanese empire attempted to maintain colonial power through strict monitoring and punishment against Koreans who opposed colonial ruling or did not comply with their policy. Colonial prison, especially Seodaemun Prison is the representative place of such policy.

1. 머리말

2. 출신 지역과 연령 분포

3. 죄명과 형량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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