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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시기 베트남 ‘난교(難僑)’ 문제

중월국경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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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화민국 외교부 당안인《귀국난교반회월남안(歸國難僑返回越 南案)》을 활용하여,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초기 베트남 ‘난교’ 문제에 대 해 검토했다. 검토 결과 확인된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발발 전후 발생한 ‘난교’ 가운데 광시성과 윈난성으로 피 난한 난교는 대부분 베트남 북부 출신 화교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베트남 북부와 광시성, 윈난성이 중월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리적 관계상 베트남 북부에서 두 개의 성으로 월경하여 피난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둘째, 광 시성과 윈난성 피난 ‘난교’는 대부분 현지 생활의 기반이 없고, 제2차 국공 내전의 정치적 혼란과 그로 인한 물가앙등 등으로 베트남의 원 거주지로 복귀하기를 희망했다. 셋째, 중화민국 정부는 ‘난교’의 베트남 복귀 진정서 를 접수하고, 다양한 외교적, 행정적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난교의 구 제와 복귀업무에 관여한 정부 기관은 행정원 선후구제총서, 교무위원회, 외교부 및 주하노이총영사관과 주사이공총영사관, 사회부, 광시성 및 윈난 성 정부 등이었다. 여기에 국제연합구제부흥사업국(UNRRA) 및 국제난민 기구(IRO) 등의 국제연합기구도 참가했다. 중화민국 정부는 치열한 국공 내전 중인데도 불구하고 ‘난교’ 구제와 복귀 업무에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당국 은 프랑스군과 베트민군 간의 교전으로 피해를 입은 ‘난교’를 위해 구제금 을 내는 한편, 양측의 교전이 진정되어 가는 1948년에 들어 여권 미소지 ‘난교’의 입국을 허가, 점차 베트남의 원 거주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주 었다.

This paper is to review the problem of Overseas Chinese refugees of Vietnam during the First Indochina War through official documents of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Republic of China. The results of these review are as follows. Overseas Chinese refugees of Vietnam who escaped to Guangxi province and Yunnan province in China were from Northern Region of Vietnam. These reasons resulted from geographical factor with China-Vietnam border. Overseas Chinese refugees of Vietnam hoped to return to former Vietnamese residence because of no means of livelihood and hyper inflation in Chinese Civil War. After accepting their petition, the Republic of Chinese government took administrative actions, including diplomatic negotiations with French Colonial Government of Vietnam. UNRRA and IRO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 in UN played a small part in solving the problem. French Colonial Government of Vietnam provided them relief funds and removed restrictions concerning passport and visa to return to Vietnam. These actions enabled them to return to former residence of Vietnam.

Ⅰ. 서론

Ⅱ.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과 베트남화교의 피해

Ⅲ. 베트남 ‘난교’ 문제의 실태

Ⅳ.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