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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948년 헌법제정과정에서 나타난 통치구조 논쟁에 관한 연구

제헌국회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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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 총선 이후에 새로운 독립국가를 조속히 건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있었던 제헌국회의 가장 큰 화두는 불안한 정국을 안정화시키면서 민주주의의 원칙에 걸맞는 헌법을 어떤 내용으로 제정할 것인지, 즉 민주주의와 정국의 안정화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정부형태는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력한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과 국회와 정부 간의 긴밀한 협조와 협력을 통해서 공고한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 때로는 투쟁하며, 때로는 협력하면서 1948년 헌법의 통치구조를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제정된 1948년 헌법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중심제에 기반하면서도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혼합적인 정부형태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혼합적인 정부형태가 처음부터 계획되고 의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입장과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입장이 상호충돌하면서 그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48년 헌법의 이러한 비체계성이 순전히 우연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적어도 번안을 주도한 한민당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대통령중심제 정부형태 아래에서 헌법에 산재해 있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들을 통해서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에 가깝게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통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통제하기 위해서 제안되었던 수정안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48년 헌법의 정부형태가 대통령중심제로 굳어진 뒤에는 제헌국회에서의 헌법제정논의의 중심이 대통령의 권한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어떻게 헌법에 구성하고 조직할 것인가로 옮겨가게 된 것도 이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이후의 헌정사에서 끊임없이 권력구조를 둘러싼 다툼의 근원으로서 작용을 하게 된다. 결국 1948년 헌법의 제정주체들은 하나의 정부형태에 대한 합의에 이르고서도 끊임없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정립하려는 모습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정부형태를 바꾸기 위해서 투쟁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정부형태에 대한 이러한 “동상이몽적”인 합의의 부재가 이후의 헌법개정에 있어서 반복되는 통치구조를 둘러싼 대립의 씨앗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After the May 10 election in 1948, the biggest issue of the Constitutional Assembly, which had a mission to build a new independent nation as soon as possible, was how to enact a constitution that fits the principles of democracy while stabilizing an unstable political situation. In other words, it was to find out what is the optimal form of government that can satisfy democracy and stabilization at the same time. In this process, the position of creating a strong government centered on the President and the position of emphasizing close cooperation and cooperation between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government sometimes struggled, and sometimes cooperated to create the governmental structure of the Constitution in 1948. The constitution of 1948, which was enacted in this way, was basically a mixed form of government that was based on the presidential government system but also had a parliamentary government system. The problem is that these mixed governmental forms were not planned and intended from the beginning, but rather were created unintentionally in the conflict between the position of claiming the presidential government system and the position of claiming the parliamentary government system. However, it should be noted here that the unconstitutionality of the 1948 Constitution is not purely a coincidence. At least, it seems that the Korean Democratic Party, which led the adaptation, still thought that the governmental form could be operated closer to the parliamentary government system through elements of the parliamentary government system scattered in the Constitution under the form of the presidential government system. It can also be confirmed through amendments proposed to control the president s powers through elements of the parliamentary government. Also, it is fully understandable in this regard that after the government form became a presidential system, the center of the constitutional debate in the Constitutional Assembly moved to how to organize various attempts to control the power of the President through the Constitution. And these attempts continued to act as a source of contention over the governmental structure in later constitutional history. After all, the authors of the 1948 constitution reached a consensus on one form of government, and it was said that they constantly struggled to reorganize the power structure and change the form of government to their understanding. And the absence of this mistaken consensus on the form of government became the seed of confrontation over the repetitive governmental structure in subsequent constitutional amendments.

Ⅰ. 서론

Ⅱ. 헌법기초위원회에서의 논의

Ⅲ. 제헌국회 본회의에서의 논의(1) : 정부형태와 국회구성에 대한 대립

Ⅳ. 제헌국회 본회의에서의 논의(2) : 국회와 정부의 권한에 대한 대립

Ⅴ. 제헌국회 본회의에서의 논의(3) : 법원과 헌법위원회

Ⅵ.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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