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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북한 역사학계의 三國時代 연구

A Study on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North Korea’s Histor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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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1955년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란 연설 이후, 북한의 역사학계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역사적으로 이론화시키려 노력하였다. 기존, 북한의 역사학계는 백남운의 주장에 따라 삼국시대를 세계사적 보편성에 맞춘 노예제사회로 보았다. 하지만, 1950년대 ‘북한에서의 삼국시기 사회경제구성에 관한 논쟁’을 시작으로 기존 백남운의 노예제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김광진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김광진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제론자들의 주장으로 1956년 9월 삼국시대 사회구성 문제를 다룬 1956년 개정판 『조선 통사』(상)가 출판되었다. 하지만, 1956년 개정판 『조선 통사』(상)는 노예제론자와 봉건제론자의 대립을 유보해 둔 상태에서 서술된 것이다. 이후, 북한 역사학계는 1962년 개정판 『조선 통사』(상)를 출판하면서 삼국시대의 시기 구분과 사회 성격 수정하였다. 이러한 수정은 김석형이 제시한 봉건제론적 절충론으로, 세계사적 보편성과 조선만의 특수성이 결합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삼국시대를 봉건제 사회로 본다. 북한은 정치적 형태에 따라 『조선 통사』(상)의 내용을 서술했으며, 여러 차례개정과 편찬을 되풀이하였다. 북한의 역사학계는 북한의 정통성을 고조선과 고구려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역사 서술에서 고구려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상대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를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가 북한과 같이 수도가 평양에 있었으며, 고구려 유적이 대부분 북한에 있는 것을 토대로 고구려와 북한을 일치해서 보는 의식이 표현된 것이다. 또한, 신라와 남한을 같이 보고, 과거 신라가 親唐 정책으로 민족을 배신했던 것처럼, 남한도 親美 정책을 통해 신라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North Korea’s social structure was often driven by Kim Il-sung’s doctrine. In this atmosphere, the historical community of North Korea overcame the existing nihilist bias and emphasized the Communist Party and its historical principles. Since Paik Nam-un defined the Three Kingdoms as a slave society, North Korean academia has seen critical views on the existing slavery theory of Paik Nam-un, starting with the “Discussion on the Social and Economic Composi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North Korea” in the 1950s. This discussion focused on the distinction between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in the mid-1950s, and as a result of the discussion, the 1956 edition of “Chosun Tongsa”, which dealt with the social composition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was published in September 1956. The division of ancient history in North Korea described the 1962 edition of the “Chosun Tongsa” (award), and the debate over the timing and social character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ended with the victory of feudalists. This is a compromise that partially accepted the content of slavery in view of the social structure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as a feudal society according to Kim Seok-hyung’s argument. Kim Seok-hyung’s compromise applies a method of dividing the ancient period of North Korea from a primitive community to a feudal society (after the Three Kingdoms) through slavery (Gojoseon, Buyeo, and Jinguk).

Ⅰ. 머리말

Ⅱ. 『조선 통사』(상)의 三國時代서술 분석

Ⅲ. 북한 역사학계의 三國時代성격 정의와 연구 경향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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