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동시대 예술 생산 현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 중에 하나는 퍼포먼스 지향적 작업의 분출이다. 이러한 예술 실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1960년대의 예술 생산 현장에서 목격되었던 퍼포먼스 작업의 분출과의 차별화를 위해 “제 2의 수행적 전환(the second performative turn)”이라 불렸다. 이 글은 동시대 예술 실천과 이론 생산의 “수행적 전환”의 국면에서 일상 언어 발화의 실천적 효과를 설명하는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이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퍼포먼스(performance)와의 어원적 유사성으로 인해 퍼포먼스 지향적 작업의 일반적 특성으로 오해되고 무비판적으로 통용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 수행성 이론이 근거하고 있는 일상 언어 발화와 예술적 발화로서의 퍼포먼스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차이점을 살펴보고 수행성 개념과 예술적 발화의 관계성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수행성 개념의 기원인 제이엘 오스틴(J.L. Austin)의 수행문(the performative) 개념은 행위를 불러오는 일상 언어 발화의 실천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이를 위해 오스틴은 연극 무대나 시인의 낭송과 같은 예술적 발화를 수행문 개념에서 제외시키며, 예술적 발화는 허구적 발화이고 이는 실천적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일상 언어의 실천적 효과를 설명하는 개념어로 무대에서의 행위를 뜻하는 퍼포먼스라는 용어를 차용함으로써 오스틴 스스로가 수행문 개념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예술적 발화로서의 퍼포먼스에 대한 오스틴의 이러한 모순적 태도에 주목한다. 오스틴이 일상 언어 발화와 차별화하기 위해 진지하지 못하다고 단정한 예술적 발화는 마치 메시지가 담긴 병을 누군가 꼭 발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바다에 던지는 행위처럼,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할지 알지 못한 상황을 감수하는 ‘진지한’ 행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적 발화는 오스틴의 ‘불발’ 개념에 부합하며, 이것은 오스틴의 수행문 개념을 확장시킨 데리다가 <서명사건 문맥>(Signature Event Context)에서 발전시킨 ‘이중적 쓰기’ 개념과 공명한다. 데리다는 오스틴의 수행문 개념이 특정한 문맥을 전제한다고 지적하고, 특정한 문맥을 너머 작동하는 발화를 ‘쓰기’로 설명한다. 이러한 ‘쓰기’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부재한 상태에서도 ‘쓰기’로 작동해야 하는 이중성을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중적 쓰기’의 수행적 효과는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이다. 이 글에서는 데리다가 주장한 ‘이중적 쓰기’의 수행적 효과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동시대안무 실험들의 구체적 사례들을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데리다를 통해 해체적으로 재구성된 수행성 이론이 어떻게 예술적 발화로서의 퍼포먼스 지향적 안무 실험을 분석하는 개념적 틀로 차용될 수 있는지 드러낼 것이다. 제롬 벨(Jérôme Bel)의 <제롬 벨>, 자비아 르 루아(Xavier Le Roy)의 <회고전>, 안나 테레사 키르스메커(Anna Teresa Keersmaeker)의 <작업/작업/작업>, 에스터 솔로몬(Eszter Salamon)의 <무의를 위한 춤>를 분석하면서, 안무적 실험에서 작동하는 ‘이중적 쓰기’의 수행적 효과로 인해 어떻게 근대 무용 제도에서 보장된 안무가-주체 개념에 균열이 가해지는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안무가-주체가 탈중심적이며 상황에 열려있는 상태의 ‘관객-주체성’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낼 것이다.
This article departs from the problematics of the ways in which the notion of performativity is consumed in contemporary art without critical reflection. The term “the performative” was produced in a linguistic philosophical debate, prompted by J. L. Austin. Echoing Jacques Derrida’s attempt to expand Austin’s notion of the performative to écriture in “Signature Event Context”, it aims to expand Austin’s notion of misfires in relation to what I would call “artistic utterances”. Austin articulates “misfires” as a breach of speech-acts that becomes infelicitous. Speech-acts turns it to be infelicitous as long as it presupposes empirically determined subjects (both receiver and sender) in the communication. In contrast, Austin’s “misfires”becomes felicitous in artistic communication if we understand artistic utterances in a different way from linguistic utterances in everyday language. Artistic utterances is like a throwing a bottle with a secret message into the ocean. Neither sender nor receiver knows when, if, how, or to whom this message will arrive, but this act of throwing a bottle demonstrates a serious will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Furthering investigation of artistic utterances with an operational mechanism that echoes Derrida’s articulation of écriture, this article develops an analysis of contemporary choreographic experiments such Jérôme Bel’s Jérôme Bel, Xaiver Le Roy’s Retrospective and Anna Teresa Keersmaeker’s Work/Travail/Arbeid. By doing so, it highlights how choreography as a particular technique developed to be a ‘double-writing’ contributes to decentralized and open-ended subjectivity that goes beyond a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a choreographeras a master of movement that he or she produces. I will articulate the urgency of this decentralized subjectivity in contemporary choreographic experiments as“audience-subjectivity”. Audience-subjectivity in contemporary choreographic experiments blurs the boundary between sender and receiver in artistic utterances.
1. 들어가는 글: 동시대 예술 실천에서의 수행적 전환
2. 이중적 쓰기: 자기반영적 주체의 불가능성
3. 관객-주체성: 새로운 주체성의 출현
4. 나가는 글: 관람객-주체성의 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