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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儀禮, 記念物, 그리고 個人墓의 발전

Ritual, Monument, and the Development of Individualized Bu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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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사회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동북아시아 일대에 등장하는 가장 뚜렷한 물질적인 양상 중에 하나는 지석묘, 혹은 지석묘군이다. 이러한 기념물적 분묘는 동북아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거의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물질적 양상이다. 특히 유럽 신석기시대의 環濠, 헨지, 神殿, 長形墳, 巨石墓등과 같은 기념물 혹은 기념물적 물질양상이 출현, 지속, 조합, 변형되는 과정을 보면 동북아지역의 양상과 비교할 만한 요소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북서유럽에서 장형분과 같은 기념물적 분묘가 주거와 취락을 모델로 등장하는 과정, 규모와 형태를 오래 유지하도록 석재를 사용하게 되는 과정 등은 동북아의 기념물적 분묘가 발전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 동북아 일원에서 農耕社會의 정착이 전체 경관으로 확대되어가는 시점에 遼東과 西北韓지역에서 卓子式지석묘가 등장하고 이와 아울러 각 지역에서는 취락 주변에 개인의 분묘가 축조된다. 이와 같은 初期形의 墳墓와 卓子式支石墓라는 기념물적인 구조물은 서로의 요소가 결합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巨石墓로 발전한다. 동북아 초기 농업사회에 등장하는 기념물 요소로는 環濠, 支石墓, 周溝墓, 石築祭儀遺構, 그리고 大型木造建物등으로 이 유구들이 지닌 제반 건축요소들은 경우에 따라 서로 복합되기도 하고 어느 하나의 성격을 가진 유구가 다른 의미와 기능을 지닌 구조물로 대체되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는 이를 문화경관으로 통칭하고자 하며 취락과 경작지 등과 함께 당시의 사회적인 관계와 권력의 행사를 정당화 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유럽에서 共同體的儀禮를 통해 共同墓로 조성된 巨石墓가 威勢品이 다량 부장된 개인묘로 대체되는 현상은 동북아 일대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이미 지석묘에 威勢品으로 제작된 武器形磨製石鏃과 石劍, 銅劍이 부장되고 특정 묘역식지석묘는 그 규모에 있어서 분묘-간의 차별화를 극대화 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 동북아에서는 巨石墓단계에 이미 개인 지향형의 정치권력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내다보게 한다.

After a half millennium had passed from the first occupation of the intensive agriculturalist villages on the river terraces, the various types of monumental construction began to dominate the local landscapes of Northeast Asia within which includes the Eastern Liaoning area(遼東), the western part of Korean Peninsular, and Northern Kyushu(九州). The monuments, such as ditch enclosures, long burial structures, megalithic burials, and dolmens, of Northeast Asian early farming societies, not only originated from the very similar context to those of European Neolithic, but also showed the comparable development trajectories to the changes of European monumentalities. At the late stage of the early Mumun period, different types of monument occurred at different places in Northeast Asia. For Examples, the dolmen type megalithic monument appeared on the hilltop looking down over the arable land and farming village in the Eastern Liaoning and the Northwestern Korean Peninsular, the long ditch-enclosed burials which bore much resemblance to the long house for the living began to be constructed on the terrace of the upper Han river valley. During the middle Mumun period, the megalith burials accomplished by putting together the different elements from the earlier monuments developed into the large groups of the capstone-and-stone-platform type burials in Southern Korea. The largest capstone-and-stone-platform type burial in the group, for example No. 1 burial of Deokcheon-ni megalithic group, whose burial chamber was placed in a 4.5 m-deep shaft was situated in the middle of the stone-lined platform of 3,808 m2in area (112 m in length and 34 m in width). The personalized leadership was established in the local groups of Southeastern Korea at the later phase of Middle Mumun period.

Ⅰ. 머리말

Ⅱ. 硏究史的檢討와 東北亞支石墓의 基本性格

Ⅲ. 북서유럽의 記念物과 墳墓의 變遷과 解釋

Ⅳ. 東北亞支石墓의 特質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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