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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식민지 가라후토(樺太)의 신사 창건과 신사정책

Establishment of Shrines and Shrine Policy for Japanese Colony of Karafuto

DOI : 10.24939/KJH.2021.8.5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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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가라후토에 있어서 신사의 창건과 신사정책은 일본 정부의 가라후토의 개척과 일본인 이주라는 상호 밀접한 관계 속에서 추진되었음을 인지하고 그 특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에도시대 후기에는 어장과 상업교역에 종사하는 일본인은 에도막부로부터 허가를 받으면 가라후토에서 거주가 가능하였다. 그래서 어장 개발이 추진되었던 구??코탄이라는 지역에는 일본인이 거주하며 생활하였고 신불습합의 벤텐샤라는 신사가 많이 창건되었다. 1910년에 가라후토에서는 처음으로 국가가 공인하는 신사로서 관폐대사 가라후토신사가 창립되었고 개척에 관련된 신들을 제신으로 모셨다. 이는 1910년에 들어 가라후토청이 일본 내지로부터 개척과 농업 이주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농업 이주는 순탄하지 못했고, 1915년까지 가라후토에서의 ‘척식=개척과 식민’은 어업이 중심이었다. 1920년에 들어 제지・펄프 산업이 발전하면서 공업제품의 생산량 증가와 함께 일본인 이주자도 큰 폭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1921년에 가라후토청은 신사규칙을 공포하고 시행하였는데 1921년 한 해에만 창립허가를 받은 신사는 30곳이었다. 이는 척식에 의한 가라후토의 공업발전과 함께 일본인의 이주 정착이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신사의 창건도 증가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사가 많이 창립된 곳은 가라후토의 주요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어업과 제지・펄프 공업이 개발되고 발전한 지역이었다. 이상과 같은 근거를 토대로 가라후토의 신사는 ‘개척’과 ‘경제적 목적으로 일본인을 이주시키는’=‘척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was aimed at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Japanese shrine policy and the establishment of shrines in its colonial region of Karafuto, commonly known as South Sakhalin, in recognition of their close connection with the colonization of Karafuto and Japanese immigration. During the late Edo period, Japanese citizens who engaged in fishing and trading were allowed to live in the Karafuto region with a permission from the Tokugawa shogunate. As a result, Japanese people moved to live in a fishing village called Kushunkotan (or Korsko) where the development of fishing grounds was promoted and many benzaiten-sha shrines of Shinbutsu-shugo were established. In 1910, the first top-ranking shrine, Karafuto Shrine, was built in Karafuto to worship gods. This is related to Karafuto Prefecture’s efforts to encourage the colonial and agricultural migration of mainland Japanese starting in the same year. But agricultural migration did not proceed well, and Japanese colonial development was carried out mainly on the fishing industry until 1915. Thanks to the development of the paper and pulp industries in 1920, Karafuto saw increasing production of industrial products and dramatically growing Japanese immigrants. Then, the Karafuto Prefecture government promulgated and enforced rules to regulate shinto shrines in 1921, and granted a permission for 30 new shrines in the same year. This means that Japan’s colonial development led to industrial development in Karafuto, which in turn, resulted in increasing migration of Japanese people and establishment of shrines. These shrines were built mainly in Karafuto’s industrial development areas such as fishing, paper and pulp businesses. Based on these findings, this study suggested that shrines in Karafuto are closely related to Japanese colonial development focusing on relocating its people for colonial and economic purposes.

Ⅰ. 머리말

Ⅱ. 에도(江戸)시기부터 메이지(明治)시기의 신사

Ⅲ. 1906년 이후 신사의 창건 과정

Ⅳ. 일본의 패전과 신사의 종말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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