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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7세기 말~18세기 초 쓰시마번의 대막부교섭 논리 변화

‘通交’의 개념적 확장과 ‘藩屛의 武備’론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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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7세기 후반 이래로 쓰시마번이 추진한 대막부교섭의 논리적 변화를 고찰하였다. 일찍부터 막부는 쓰시마번의 역할로서 ‘조선통교’를 인정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7세기 후반에 시작된 조선 무역의 쇠퇴 속에서 쓰시마번은 막부에게 통교의 지속을 위해서는 무역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무역상의 특권을 인정받았다. 한편 동시기에 쓰시마에서는 ‘번병’이라는 자기인식이 생겨났다. 이와 더불어 막부를 상대로 한 번의 주장 또한 점차 ‘이국 제어’의 논리와 결부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쓰시마번은 무역은 일찍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하달한 경제적 권리이자 ‘번병의 무비’를 수행할 재원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보존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나아가 통교에 대해서도 청의 침략을 막는 방파제인 조선을 ‘일본의 위광’을 통해 지켜낸다는 숨겨진 목적이 있음을 덧붙였다. 이로써 쓰시마번의 담론 속에서 통교는 대외관계 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이국 제어’의 한 측면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18세기 초에 쓰시마번이 주장한 논리상의 개념과 구조는 이후에 발전을 거쳐 18세기 후반의 대막부교섭에서 등장하는 ‘조선 제어의 역’ 담론으로 구성되어 갔음을 전망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This article attempts to discuss about the logical changes in negotiations with the bakufu that the Tsushima-han since the late 17th century. The bakufu had admitted the Chōsen-Tsūkō, the communication to Joseon, as the role of Tsushima. But at the late 17th century the trade with Joseon started to wan, Tsushima insisted that it has to be kept to maintain the Chōsen-Tsūkō. As the result, Tsushima preserved their privilege by the bakufu. In the meantime, Tsushima started to recognize themselves as the Hampei, a bordered region toward foreign lands. At the same time, Tsushima’s assertions against the bakufu were gradually linked to the logic of Ikoku-osae, the control of foreign invasions. Under these circumstances, Tsushima petitioned for the preservation of the right to trade which had been their financial source of the military readiness of Hampei, since the Tokugawa Ieyasu’s order. Furthermore, they insisted that Tsūkō is an important role that keeps Joseon as a breakwater against the Xing’s invasion. As a result, on the discourse of Tsushima in the early 18th century, the Chōsen-Tsūkō came to exist as a means of maintaining the balance in foreign relations and as an aspect of Ikoku-osae. Finally, it is suggested that the logical concept and structure asserted by Tsushima in the early 18th century was developed into the discourse on the role of Chōsen-osae used in negotiations with the bakufu in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Ⅰ. 머리말

Ⅱ. 17세기 通交와 무역에 관한 막번 간의 합의

Ⅲ. ‘藩屛의 武備’론의 형성 배경

Ⅳ. 通交의 개념 변화와 ‘이국 제어(異國押え)’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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