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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신라의 ‘남·북 한산성’ 축조와 경영

Silla’s Construction and Management of ‘South and North Hansanseong’

DOI : 10.18347/hufshis.2021.79.75
  • 359

이 논문은 신라의 ‘남·북 한산성(漢山城)’을 중심으로 신라가 현 서울 지역, 즉 한강 하류역(下流域)을 점령한 뒤 어떻게 성을 쌓아 확보하고 편제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검토, 정리한 것이다. 신라의 남·북 한산성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한산주(漢山州)와 북한산군(北漢山郡)의 성으로 이성산성과 아차산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각각을 그것에 비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신라는 진흥왕 14년(553)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그것을 신주(新州)로 편제한 직후 기존 한성(漢城, 대체로 몽촌토성) 인근, 영남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이성산성을 신축하였다. 또 왕도에서 국원을 거쳐 한성, 평양으로 이어지는 간선 교통로 상에 몇 개의 중간 거점을 더 마련했는데, 특히 한성에서 광진(廣津)을 건넌 곳에 아차산성을 축조하여 한강 이북 진출 및 지배의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신주를 관할한 정(停)의 최초 소재지는 한성, 즉 이성산성으로 파악되며, 그 뒤 남천(南川, 현 이천)으로 이치되었다가 다시 한(산)성 혹은 북한산성으로 되돌아왔다. 통일 전쟁 시기에도 잠시 남천으로 간 적이 있지만, 곧 한(산)성 혹은 북한산성으로 되돌아와서 통일 후에는 한산성이 주치(州治)로 확정되었다. 중고기(中古期) 남·북 한산성에는 각각 도사(道使)가 파견되었으며, 군(郡)의 중심 성으로서 당주(幢主)가 주둔하기도 했을 것이다. 통일기에 들어 현제(縣制)가 도입되면서 북한산성은 북한산군의 군치가 되고 군 영역 내의 골의노성(퇴뫼산성)과 개백성(행주산성)은 각각 골의노현과 개백현이 되었다. 북한산군의 치소(협의)는 통일 후에도 일정 기간 산성 내에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산성 아래 광진 주변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읍(邑, town) 정도의 공간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며,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치소 역시 결국 그곳으로 이전되었을 것이다.

This paper examined the issue of how Silla built and organized fortresses after occupying the lower Han River basin, the current Seoul area, centering on Silla’s ‘South and North Hansansung.’ They were the fortresses of Hansan-ju province and Bukhansan-gun county in “Treatise on Geography,” Samguksagi. As researches on Iseong hill fortress and Acha hill fortress have progressed, they can be determined as the sites of ‘South and North Hansanseong,’ respectively. Silla occupied the Han River basin in the 14th year of King Jinheung’s reign (553) and established it as Sin-ju (新州). Iseong hill fortress was built near the existing Hanseong and on the road leading to Yeongnam. In addition, several more intermediate bases were established on the main routes from Wangdo to Hanseong and Pyongyang, especially Acha hill fortress, which is located across from Gwangjin ferry, to serve as a base for advancement and domination north of the Han River. The first location of Jeong (停), which was in charge of Sin-ju, was Hanseong, that was Iseong hill fortress, and was then relocated to Namcheon (currently Icheon) before returning to Hansanseong or Bukhansanseong. During the Unification War, it went to Namcheon, but soon returned to Hansanseong or Bukhansanseong, and after the unification, Hansanseong was confirmed as the center of the province. In the Middle old period, dosa (道使) were dispatched to Hansanseong and Bukhansanseong, and dangju (幢主) would have been stationed because they were the centers of each county. With the introduction of Hyeon (縣, prefecture) during the Unification Period, Bukhansanseong became the center of Gun (郡, county), and Goluinoseong (Temeosanseong) and Gaepaekseong (Haengjusanseong) within the county became Goluino-hyeon and Gaepaek-hyeon. Although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Bukhansan-gun’s goverment office was maintained within the fortress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after unification, the town would have been formed around Gwangjin under the fortress, making it difficult to specify the time, but local goverment office would have also been relocated there.

Ⅰ. 머리말

Ⅱ. 신라의 ‘남·북 한산성’: 이성산성과 아차산성

Ⅲ. 성의 축조와 편제

Ⅳ. 통일기 한양군(북한산군)의 공간 구조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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