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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일본의 독도편입과 한국의 항의 부존재에 관한 검토

나가시마 히로키(永島広紀) 「‘내정’화하는 한일의 ‘외교’」에 대한 반론

나가시마 히로키의 논문은 통감부 체제 하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에 대한 한국의 항의의 부존재가 일본의 독도 편입을 묵인 또는 승인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나가시마는 통감부와 한국 정부 사이에 이루어진 실무적인 서류 왕래를 한일 간 외교의 ‘내정화’라 정의하고, 외교의 내정화는 한일 정부 간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여 한국정부의 의사표출을 쉽게 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통감부체제라는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지배체제 하에서의 연락 구조의 강화는 오히려 일본의 한국 ‘예속화’를 심화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통감부 통치의 본질이나 실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잘못된 판단이다. 설령 나가시마의 주장대로 한국의 항의의 부존재가 입증된다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일본의 독도편입의 정당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독도편입 사실을 인지한 1906년 5월 이후부터 한국의 주권이 완전히 상실되는 1910년 8월까지의 약 4년여의 기간 동안 한국이 침묵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독도에 대해 새로운 권원을 설립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유권을 포기하거나 양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항의의 부존재가 있었다 하더라도, 4년여의 짧은 기간의 실효적 지배만으로는 새로운 권원을 확립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견해이다.

Nagashima Hiroki s study attempts to prove that korea s failure to protest Japan s incorporation of Dokdo under the Japanese Resident-General system indicates that it condoned(acquiesced) or approved of the incorporation. Nagashima defined that diplomatic issues between korea and Japan were “treated as internal affairs” since diplomatic correspondence was carried on at working level between the korea government and the Japanese Residency-General, and deduced that such internalization of diplomacy would have made it easier for the korea government to express its intentions by mak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orea and Japanese governments closer. In fact, the strengthening of the liaison structure under the vertical and coercive governance system of the Residency-General system was merely a reinforcement of korea’s subordination to Japan. Considering this aspect, his argument is a false judgment resulting from a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essence or substance of the governance of the Japanese Residency-General. Even if it can be proven that there was no protest from korea, as Nagashima claimed, this fact cannot be pointed to as a justification of Japan s incorporation of Dokdo. I would like to emphasize that Japan cannot establish a new legal title for Dokdo, simply because korea was silent for four years, from April and May of 1906, when korea realized Japan had incorporated Dokdo, to August 1910, when korea s sovereignty was completely lost. It is the opinion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that in the absence of any abandonment or transfer of sovereignty, even if there is no protest, a short period of four years of effective rule cannot establish a new legal title.

1. 머리말

2. 나가시마 논문의 요약과 논점

3. 나가시마의 논지에 대한 평가

4. 영유권 문제에서의 항의의 부존재에 대하여

5. 일본의 독도편입과 그 후의 조치에 대한 평가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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