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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태정관지령」 부속 지도

「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 발견 경위와 그 의의

1. 「태정관지령」 부속 지도 「기죽도약도」 발견 경위 2005년 3월 대신대학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 죄에 대한 설교를 계기로 나는 독도 문제와 관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죽도 외 1도 건에 대해서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고 하는 태정관(太政官) 지령이 원본에서는 붉은 글씨로 되어 있는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붉은 글씨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그 의미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원본의 개시 신청을 하고 동년 5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본에는 「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울릉도 약도)로 쓰인 작은 봉투 안에 접혀진 한 장의 부도(付圖)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죽도약도」였습니다. 펼쳐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부도 오른쪽 상단에도 「기죽도약도」라고 기록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죽도(울릉도)와 함께 송도(독도)가 그려져 있던 것입니다. 2006년 5월 고신대학 강연에서 제시한 공문록 및 「기죽도약도」에 대해 6월 7일 부산 MBC 문화방송이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에서 공개하였습니다. 독도연구자인 박병섭 선생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사료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즉시 인터넷상에 공개하였습니다. 「기죽도약도」의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인터넷상과 서적( 『다케시마=독도논쟁』 內藤正中・박병섭, 2007년, 新幹社)에 공개한 것은 박병섭 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2. 「태정관지령」 부속지도 「기죽도약도」의 의의 「기죽도약도」가 발견되기 전부터 공문록 사료를 진지하게 마주 한 연구자들은 ‘외 1도’가 송도(독도)라고 하는 바른 결론을 당연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기죽도약도」는 이러한 연구자들의 연구의 결과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박병섭 선생님이 “「공문록」에 쓰여진 외 1도인 송도(松島)가 독도인 것은 「공문록」 부속 「기죽도약도」를 보면 일목연하다”(『시모죠 마사오의 논설을 분석한다』, 90쪽, 『독도연구』 제4호, 2008년, 영남대학 독도연구소)고 적고 있는 대로입니다. 태정관지령을 문서사료와 함께 확인한 「기죽도약도」에 의해서 ‘외 1도’가 어느 섬을 가리키고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하는 견해는 거부되었습니다. 게다가 ‘외 1도’를 공문록 그 자체로 부터 해석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해 공문록 밖에서 독도 이외의 섬이라고 결론지으려고 하는 잘못된 시도와 결론도 무력화시켜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독도 문제 독도연구의 제1인자로 거론되는 고 나이토 세이쥬(內藤正中) 선생님은 일본 외무성의 자세를 “과거의 역사와 정면에서 부터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역사의 일부를 편의주의에 따라 수박 겉핥기를 하고, 그 한편으로 자신의 주장과 맞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고 고려하지 않는다”(『죽도=독도문제입문』 64쪽)고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즉, 국가가 역사로 부터 진심으로 배우고 마주보고 역사적 사실을 존중해 간다면, 독도 문제도 해결의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국의 역사에서 진심으로 배운다는 것은 국가 스스로가 그 시대의 역사에 새겨진 발자취로서 역사적 사료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진지하게 응시하고 회개하는 것에 의해서 미래는 올바르게 열어 갑니다. 「기죽도약도」 등이 중요한 사료는 이것을 보는 사람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진실로 마주 보는지 어떤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죽도(울릉도) 외 1도(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 태정관지령은 확실히 오늘 일본에게 회개를 강요하는 지령인 것입니다.

1. 머리말

2. 독도문제에 관여하게 된 계기

3. 「기죽도약도」의 발견 경위

4. 「기죽도약도」의 의의

5. 시마네현 인식과 태정관 인식은 일치한다

6. 외무성에 질의

7.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알려고 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국가

8.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처리에 대해서 생각한다

9.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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