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는 성을 산출자가 아닌 소이(所以)로서 정의하여 이학이 본체론으로 발전하게 추동하였다. 이이는 이(理)가 소이(所以)로서 형이상자이고, 동시에 이통(理通)의 맥락에서 기(氣)의 주재자가 된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 이것은 이정과 주희의 견해를 본체론의 관점에서 더욱 명료하게 밝힌 것이다. 그것은 당시 조선과 중국의 이학사에서 형이상자와 관련해서 전개되었던 견해들에 대한 응답이었다. 화담과 제자들이 태허와 태극에 대하여 만물의 산출자로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 사칠론에서 이를 기와 별개의 소종래로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 그리고 나흠순이 이를 기의 조리(條理)로서만 설정하였던 것 등이 모두 본체론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형이상 개념의 맥락을 새롭게 해명한 것이었다. 이후 조선 이학사에서 이이의 관점은 산출자가 아닌 본체의 맥락에서 형이상자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이학이 전개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이후 동아시아 학술사에서 이의 본체론적 위상을 약화시켜갔던 방향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Cheng Yi defined Taiji, Li or Nature as what makes something such and such, not as the generator of all things, driving Neo-Confucianism to develop into a correlative understanding of the world between root-oneness and function-diversity. Yi Yi made it clear that Li is a metaphysical thing that makes something be such and such, and he also insisted that Li is the root identifier that makes diver things having one identity in the context of oneness which is penetrated through all things. This was a more lucid articulation of Cheng Yi and Zhu Xi s views from a ontological perspective. Yi Yi criticized Seo Gyeong-deok and his disciples for giving Taihe and Taiji a meaning as the generator of all things, Yi Hwang s giving a meaning to Li as a generator in relation to the four buds of Goodness, and Na Hum-soon s establishment of Li only as the inherent principle in the concrete world. However, in East Asian history since the 17th century, Yi Yi’s ontological articulation of Li was contrary to the direction that weakened the ontological status from Li.
1. 머리말
2. 형이상(形而上)에 대한 이정(二程)과 주희(朱熹)의 견해
3. 이이(李珥)의 이(理) 개념
4. 맺음말: 학술사적 의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