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 후기 해남 대둔사 승려 초의 의순이 직접 만들었던 초의차(草衣茶)의 제다법과 그 특징을 문헌 자료를 살펴 고찰한 글이다. 초의는 1809년부터 다산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다산초당을 왕래하면서 다산으로부터 차(茶)를 배웠다. 이때 다산은 제자들과 함께 한해에 수백 근에 달하는 차를 직접 생산하였고, 만덕사(萬德 寺)와 보림사(普林寺) 승려들에게 자신의 제다법을 가르쳤다. 다산의 제다법으로 만들어진 차는 정차(丁茶)⋅남차(南茶)⋅만불차(萬佛茶)⋅죽로차(竹露茶)⋅보림차(普林茶)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초의가 직접 만든 초의차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30년 금령 박영보와 자하 신위가 초의차를 마신 후 지은 「남차병서」와 「남차시병서」를 통해서이다. 1831년 다시 상경한 초의는 직접 만든 보림차를 자하 신위에게 선물하였다. 이유원은 「호남사종」과 「죽로차」를 통해서 보림차가 다산의 제다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초의도 다산의 제다법 그대로 보림차를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초의차도 다산의 제다법과 동일하게 여러 번 찌고 말리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초의차는처음에는 증청법으로 떡차를 만들었지만 이후 솥에서 덖는 초청법으로 살청법이 바뀌었다. 초의차는 죽로차(竹 露茶)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 죽로차가 일반적인 차보다 더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830년부터 1878년까지저술된 초의차 관련 문헌 자료에서는 한결같이 초의차가 떡차였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through literature review, the tea manufacturing method and characteristics of Chouicha developed by Choui Eui sun, a monk at Daedunsa Temple, Haenam, in the late Joseon Dynasty. Choui, since 1809, learned tea manufacturing from Dasan, traveling to and from Dasanchodang. At that time, Dasan, together with his disciples, produced hundreds of pounds of tea a year and taught the monks from Manduksa and Borimsa temples how to make tea. Tea made with Dasan s tea manufacturing method has been called by various names, such as Jeongcha, Namcha, Manbulcha, Jukrocha, and Borimcha. Chouicha became known to the world in 1830 through Namchabyeongseo and Namchasibyeongseo, written by Geumryong Park young-bo and Jaha Shin wi after they drank Chouicha. In 1831, Choui, after returning to Hanyang, presented Borimcha, which he had made by himself, to Jaha Shin wi. Lee Yu-won testified in his writings Honamsajong and Jukrocha that Borimcha was made with Dasan s tea manufacturing method that Choui also followed. Chouicha was also made through steaming and drying several times in the same way as Dasan s tea manufacturing method. Chouicha was initially made as a lump tea with the steam-fixation method, and the pan-fixation method was applied when it is roasted in a pot. Chouicha was made as a Jukrocha since, at the time, Jukrocha was considered better than the general one. Documents related to Chouicha, written from 1830 to 1878, consistently testify that Chouicha was a lump tea.
서론
본론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