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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7세기 金時習을 바라보는 두 시선

Two Views on Kim Si-seup(金時習) in the 17th Century–Focusing on the Heo-Mok(許穆) and Song Si-yeol(宋時烈)

본고는 17세기 眉叟 許穆(1595~1682)과 尤庵 宋時烈(1607~1689)이 어떻게 金時習을 재해석하고자 하였고,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가장 주요한 작품은 허목의 『淸士列傳』과 송시열의 『鴻山縣東峯祠記』이다.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허목과 송시열이 주목했던 주요 인물형에 대하여 다루고, 그런 작업을 토대로 각자가 어떻게 김시습을 바라보는지 살펴보았다. 김시습에 대한 두 시선은 앞 시대의 맥락들이 수렴되어 17세기의 두 영수에 의해 집약된 것이다. 허목은 근기 남인이라 불리면서도 북인 학맥과도 밀접하기에 그런 학파적 경향을 이어받으면서 김시습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송시열은 서인의 입장에서 栗谷 李珥의 『김시습전』을 토대로 논의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허목은 李耔의 行儒迹佛을 인용하면서 북인계 奇自獻·柳夢寅이 가졌던 김시습 像을 잇고 있다. 그것은 김시습이 가진 울분에 공감하면서 遠遊에 주목하고 불교적·도가적 모습도 숨기지 않고 서술하는 방식이다. 송시열은 李珥의 心儒迹佛을 토대로 진행하면서 절의를 강조하고 불교적 모습을 대변하기 위해 泰伯을 끌어와 김시습의 절의를 설명한다. 일찍이 맹자는 伯夷를 聖之淸者라고 표현했는데, 두 사람은 이런 백이에게서 볼 수 있는 ‘淸’과 ‘節’의 모습을 김시습에게도 적용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강조점은 달랐다. 허목은 세상의 변고를 만났을 때 신하가 취할 수 있는 ‘淸’을 강조하고, 송시열은 신하가 무엇보다 지켜야 하는 ‘節’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는 두 지성이 17세기라는 혼란한 시대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바, 김시습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 일단을 엿보고자 하였다.

This article examines how Heo-mok and Song Si-yeol tried to reinterpret Kim Si-seup in the 17th century, and what context it took place in. The most important works are Heo Mok s 『ChungSaYeolJun(淸淸列傳)』 and Song Si Yeol s 『HongSanHyeonDongBongSaGi(鴻山縣東峯祠記)』. Prior to looking at this, Heo-Mok and Song Si-yeol dealt with the main character types that they noticed, and looked at how each person looked at Kim Si-seop based on such work. Heo-Mok is called the “Geungi Namin(近畿南人)” but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Beukin(北人) connections. Therefore, Kim Si-seup was described while inheriting such a scholarly trend. Song Si-yeol inherited and developed the discussion based on Lee lee’s 『Kim Si-seup jeon(金時習傳』. Heo-Mok continues the image of Kim Si-seup, which was held by Ki Ja-hun and Yu Mong-in of the Beukin(北人) community, citing Lee-Ja’s ‘HangUJuckBul (行儒迹佛)’. Song Si-yeol emphasizes the temple as he proceeds based on Lee-lee’s ‘SimUJuckBul(心儒迹佛)’ and explains Kim Si-seup’s temple by bringing Tae-baek(泰伯) to represent his Buddhist figure. Mencius used to describe Baek-Yi(伯夷) as ‘SungJiChungJa(聖之淸者)’, and the two applied the ‘Chung(淸)’ and ‘Jul(節)’ found in Bae Yi to Kim Si-sup as well. Nevertheless, their emphasis was different. Heo-Mok emphasized the ‘Chung(淸)’ that his subjects could take when meeting the world s hardships, and Song Si-yeol emphasized ‘Jul(節)’ that his subjects should protect above all else. This is also in line with the agony of how the two intellectuals will solve the chaotic era of the 17th century, and I tried to get a glimpse of the story through a prism called Kim Si-seup.

1. 들어가며

2. 미수의 인물관과 淸士 김시습

3. 우암의 인물관과 節士 김시습

4. 나가며: 淸士와 節士의 거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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