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毅堂 朴世和(1834~1910)를 통해 國亡의 현실 상황에서 道의 滅亡을 겪으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문학을 통해 고찰하였다. 나아가 國亡과 道亡의 현실을 대처했던 한말 전통 유교지식인의 고뇌와 대응 의식을 살펴보았다. 박세화는 함경남도 함흥 南關지역에서 출생하였고 이 지역에서 기호 유림에 학단을 구성한 독특한 이력을 소유한 저명한 재야 학자였다. 그리고 한말 서구 열강의 침탈과 신구사상의 갈등기에 전통적, 재래적 이념인 주자학을 통해 시대의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던 유교지식인이었다. 그는 한말 혼돈기에 유입된 서양문물에 대해 『맹자』와 『춘추』 등 주자학 경전을 기반으로 衛正斥邪와 尊華攘夷 등을 주장하였다. 곧 물질문명을 무기로 한 열강의 침략에 대해 동양의 전통적 정신문명인 주자학을 바탕으로 우위에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開化와 開物의 입장 보다는 주자학적 사고에 바탕으로 斥攘, 斥邪 등 閉物의 관점을 유지하였다. 또 『格物入門』 등 서양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서적 등을 섭렵했지만 서양문물은 기교이며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인식하였다. 박세화는 조선의 문명을 오염시킨 주된 요인이 바로 외세의 문물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재래적 사상인 주자학을 통해 ‘우리의 도[吾道]’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 수호의 방법으로는 主敬 去私 求仁을 제시하였고 문학작품을 통해 求仁의 방법과 立志․居敬․存心․窮理․力行 등 다섯 가지 공부법을 확인하였다. 그는 ‘비록 나라는 망할 수 있지만[國亡] 도는 망할 수 없다[道不可亡]’는 주자의 신념을 계승하며 道亡의 상황을 막기 위해 고분 분투하였다. 그러나 道亡의 현실을 맞이하자 道亡의 죄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靖獻, 곧 自靖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보였다. 박세화는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8월 28일, 絶粒斷食한지 23일째에 殉道의 길을 따르게 되었다. 박세화는 殉道의 순간에도 ‘禮義朝鮮’과 ‘中正仁義’의 절필유묵을 통해 조선의 정신은 예법과 의리, 性理가 결합된 도학정신임을 밝혔고 유교지식인의 마지막 소임을 표현하였다.
This paper is writing about Park, sehwa of the traditional figures in his literature. Park, sehwa was born in Hamheung of North Korea and moved up the school to the south. At that time, tradition and enlighten coincided with each other. Park, sehwa rejected Western civilization and responded in conventional ways and based on Confucian scriptures. He read liberal books but did not accept them. He expressed Jugyeong(主敬), Guhsa(去私), Guin(求仁) ideas from Jagyeongnok(自警錄) . All these assertions are based on Confucianism. Park, sehwa thought that the country could be destroyed, but the Confucian spirit could not be ruined. And he abandoned his life to protect Confucianism. So he devoted himself to his belief. Park, sehwa revealed that the spirit of Joseon dynasty was in Confucianism.
1. 서론
2. 서양문명과 時事의 이해
3. 吾道의 수호 의지
4. 自靖, 殉道를 통한 儒者의 삶
5. 결론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