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中期, 특히 三唐 이후의 詩史에 대해서는 權韠, 李安訥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근래에는 穆陵盛世를 장식하는 여타 시인에까지 연구가 확대되면서, 조선 중기의 시사는 차츰 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대 정신과 그 시적 반영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아직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石田 成輅(1550~1616)이다. 성로 詩에 등장하는 사물은 냉담하고 싸늘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혼탁한 세계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로 인한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혼탁한 세계에 직면하여 떳떳하고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근저에는 詩的 自我의 廉潔性이 놓여있다. 문집 전반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달’은 이러한 염결성을 표지하는 意象이다. 한편 자아의 의미를 明澄히 하려는 노력과는 달리, 그의 시에는 혼탁한 세계에 맞서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名節의 표상으로 陶淵明을 설정하고 憂患의 마음을 놓치 않았던 賈誼를 의식하기도 하지만, 그는 醉興의 삶 속에서 세속과 거리를 유지하려 했을 뿐이다. 이처럼 염결성에 뿌리를 둔 자아와 취흥 속에서 세상을 잊고자 하는 자아의 共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士林의 집권 과정에서 사림에 대한 가해자였던 祖父의 문제와, 사림 집권 이후 政爭의 과정에서 피해자였던 스승의 문제를 함께 감당해야 했던, 그의 역사적 位相의 반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The literary environment changed by the wars and political struggles made many literary men stand on various recognition points. Seong-ro chose a life in rivers and seas as a method for living in troublous times, and expressed his sincerity drawn from such a life in his poems. Though we can see the feature of clarification of the ego’s meanings from his poems, we cannot recognize any will to stand against such a chaotic world. That is to say, in his poems coexist an ego that tries not to loose honor and dignity, and another ego that tries to keep itself distant from the world in the life of drunken gusto and self-rest. This is resulted from the unique condition of his life, under which he could not help coping with various problems derived out of the process of Sarim’s coming into power and the separation of the East and West parties.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