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재는 매화시인으로 칭해져도 좋을 만큼 매화를 酷愛하였거니와, 그의 매화시를 분석하는 작업은 곧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핵심적 수단이 된다. 낙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란 중에 충청도 청안현감으로 부임하여 고을의 학문진흥에 전력을 기울였다. 7년간의 전란이 끝나자 고향인 星州로 돌아와서 20여년 동안 오로지 山林의 학자로서 성리학 및 퇴계학을 궁구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는 퇴계의 적전 문인 가운데 한 분인 寒岡을 師事하였으며, 낙재에게 있어서 한강은 곧 퇴계 연원에 이르기 위한 교량이었다. 낙재는 매화에 대한 癖이 있어서 수많은 매화시를 남겼다. 이는 그가 陶山書堂의 玩樂齋를 모범으로 삼아서 玩樂堂이라는 강당을 짓고서 산림에 은거하며 학문연구 및 강학에 힘쓰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이는 퇴계가 도산서당을 짓고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던 시기에 매화 및 매화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여주었고, 한강이 檜淵草堂을 짓고 향우와 문인들을 모아 강회를 하던 때에 百梅園을 조성하였던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낙재는 매화시 창작을 통해서 그가 지향하고 있는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낙재에게 있어서 매화는 그 스스로가 지향하는 정신적 귀의처였다. 그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매화의 장엄한 모습 속에서 자신이 선비로서 지향해야 할 ‘굳은 절개[苦節]’와 ‘맑은 풍도[淸標]’를 확인하였다. 또한 온갖 소인배의 득세로 인해 가려져 있던 君子의 道가 결국에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세상사의 섭리를 깨달았다. 그 결과 그는 매화의 굳은 절개와 맑은 풍도를 갖춘 군자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In the poetry of Nakjae(樂齋), Seo, Sa-Won s(徐思遠), poetry about ‘an maehwa blossom(梅花)’ is the most important part in quality and quantity. Therefore the analysis of his ‘poetry about an maehwa blossom(梅花詩)’ can be the significant means to understand his poetic individuality. Most of his poetry about an maehwa blossom has been created in some period when he retired into the country and studied intensively and educated student in private school Wanrakdang(玩樂堂) . Nakjae tried to show his peotic identity by creation of poetry about an maehwa blossom. An maehwa blossom symbolize his soul home which he want to pursue. He has found his mentality as a man of virtue(君子) in An maehwa blossom that blooms in extremely cold whether. He realized the providence of world where the virtue ultimately can be appreciated although the world is full with the mean men.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