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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紫巖 李民寏의 「柵中日錄」과 「建州聞見錄」에 대하여

A study about 「Chaekjung Ilok(柵中日錄)」 and 「Keonju Kyunmunlok(建州聞見錄)」 written by Lee Min-hwan

DOI : 10.17293/dbkcls.2008..3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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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紫巖 李民寏(1573-1649)이 지은 「柵中日錄」과 「建州聞見錄」의 저술 의도와 서술방식의 특징을 밝히고, 그 사료적·문학사적 가치를 해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주지하다시피 자암은 1618년 46세에 深河戰役에 종사관으로 참여하였다가 후금의 포로가 되어 17개월 동안 興京老城의 柵中에서 구금생활을 하다가 풀려나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자암은 ‘賣國降賊’의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이후 관로가 막히는 등 순탄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심하전역은 자암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하겠는데, 이와 관련하여 자암이 남긴 글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책중일록」과 「건주문견록」이다. 「책중일록」은 1618년 4월 명나라의 징병에서부터 1620년 7월 압록강을 건너 만포에 도착할 때까지 심하전역의 시말을 기록한 일기이며, 「건주문견록」은 누르하치 통치하의 만주족 상황과 군사제도 등을 기록하고 끝에 이들에 대한 방비책 6조를 건의한 것이다. 자암이 이를 저술한 목적은 심하전역의 실상을 국내에 사실대로 알려서 자신을 비롯한 도원수 강홍립, 부원수 김경서 등에게 씌워진 무고를 해명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후금 세력에 대한 정보를 조정에 제공함으로써, 향후 이들을 방비할 구체적인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었다. 「책중일록」에서 1619년 3월 심하 부차에서의 전투 상황과 이후 화약을 맺는 과정을 전체 분량의 1/3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나, 「건주문견록」에서 8기군 제도와 戰法, 후금의 요동 정벌 임박과 그것이 조선에 끼칠 영향 등에 주안점을 두어 서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책중일록」과 「건주문견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서술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서술하거나 대화를 그대로 기록할 뿐, 자암의 논평이나 감정의 개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저술의 목적이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통해 자신에게 씌어져 있는 무고를 해명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특징은 註의 적절한 활용이다. 자암은 「책중일록」과 「건주문견록」 곳곳에서 주를 통해 인명, 지명, 산세와 지형에 대해 보충설명을 하거나 관련된 내용을 부기해 놓음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중일록」과 「건주문견록」의 사료적 가치와 문학사적 의의를 간략히 정리하였다. 「책중일록」은 일찍부터 심하전투의 실상을 파악하는 주요한 사료로 주목받았으며, 「건주문견록」은 청나라 초기 흥성노성의 생활과 풍습 등을 연구하는 데에 가치가 있다. 문학사적 방면에서 보면 「책중일록」은 피로체험의 실기문학적 측면에서, 「건주문견록」은 해외체험의 기록 측면에서 다룰 수 있겠는데, 우리 문학사에서 후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소중한 자료라 하겠다.

In this paper, I tried to clarify the intention and the form of description of 「Chaekjung Ilok」 and 「Keonju Kyunmunlok」 which are written by Lee Min-hwan. He followed the army as an administrative manager during the battle of Shenhe in 1618, and became a prisoner in the next year. 「Chaekjung Ilok」 is a record of the battle of Shenhe from April, 1618 through July, 1620 which includes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And 「Keonju Kyunmunlok」 is a record of military circumstances about the enemies. The major reason of these writing is that he wanted to notify the actual conditions to the Royal court so that he could free from a false accusation. On the other hand, he hoped to provide the informations about Hou-Jin(後金) dynasty as well. In these diaries, he tried to subscribe everything as an observer s view. We can hardly found his emotional explanation or criticism. That s because he wanted to elucidate through these articles. Beside this, he made full use of annotation. He helped the readers to understand fully by using proper annotation through the whole book. In conclusion, I mentioned the value of these diaries in brief. 「Chaekjung Ilok」 is worthy of notice as a historical material, and 「Keonju Kyunmunlok」 could provide the life environments of early Qing dynasty. These journals are also important as a record and diaries in our literary history.

1. 머리말

2. 柵中日錄 과 建州聞見錄 의 저술 의도

3. 서술방식의 특징 : 관찰자적 입장에서의 사실 기록과 註의 적절한 활용

4. 맺음말 : 사료적 가치와 문학사적 의의를 겸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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