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7세기 전반기 영남남인 관료를 대표하던 인물 중의 한명이었던 이민환을 조명한 글이다. 이는 영남 남인의 현실에 대한 대응인식과 자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그의 가문은 영천이씨로 대대로 영천에 세거하다가 조선초 군위를 거쳐 아버지대에 의성에 정착하였고, 이후 의성에 뿌리를 내렸다. 그의 가문은 3대에 걸쳐 5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면서 의성을 대표하는 명문가가 되었다. 그는 퇴계 이황의 수제자들인 김성일, 류성룡에게서 직접 수학한 바 있었고, 중년 이후에는 특히 장현광의 영향을 많이 받음으로써 영남 퇴계학파의 정맥 상에 위치하였다. 그의 관료생활은 출사기, 시련기, 복권기 등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그가 출사한 시기는 북인이 정권을 장악해가던 시기로 입사 초반에는 청요직을 거치기도 하였지만 곧 북인과의 갈등으로 중앙의 핵심부에서 벗어나 주변부를 전전한 시기였다. 다음으로는 흥기하는 후금을 공격하기 위해 명이 요청한 부원군에 종사관으로 출병하여 결국 후금의 포로가 되어 어려움을 겪고, 귀국 후에도 항복한 전력으로 인해 고통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그는 복권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며, 이후 인생의 마지막을 의미있는 관직생활로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현실에 대한 대응 의식과 자세는 향촌에서의 활동과 국정에 대한 인식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그는 의성 유향소의 규약을 정비하고 읍지를 편찬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양반 중심의 향촌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었다는 점을 밝혔다. 다음으로 그의 국정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크게 治兵禦敵, 養民理財, 育英選才의 방안으로 나누어 살폈는데, 이 방안들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매우 현실성이 뛰어나고 또한 선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민환의 관료생활과 그가 제기한 각종 개혁안에 대한 분석은 17세기 영남 남인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 자세의 일단을 밝히는 것으로써 의미가 있다.
1. 머리말
2. 영남지역 남인으로서의 재지 기반
3. 관료 생활과 정치적 부침
4.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
5.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