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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少陵 李尙毅 使行詩 硏究

Study of quatrain written by SoLeung SangEa Lee Focusing the comparison between 「Jeongyujocheonrok(丁酉朝天錄)」and 「Shinhaejocheonrok(辛亥朝天錄)」

DOI : 10.17293/dbkcls.2010..4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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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陵 李尙毅는 아직까지 학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는 65년 생애의 대부분을 관직에서 보낸 인물로,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이라는 역사적‧정치적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인물이다. 역사적‧정치적 격변의 현장에서 일생을 관료로 생활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소릉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릉의 문집을 살펴보면 소릉의 문학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단서들이 존재한다. 특히 『여강세승』을 보조 자료로 하여 소릉의 문집을 살펴보면 그의 문학적 역량이 주로 시를 통해 표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문집 4권 중 두 권이 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나 소릉에 대한 芝峯 李睟光의 평가가 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소릉의 문학적 역량이 시를 중심으로 표출되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시를 중심으로 구현된 소릉의 문학적 역량은 그의 사행 경험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소릉은 일생 동안 두 번의 사행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두 번의 경험을 모두 시 속에 오롯하게 담아내었다. 소릉의 두 차례 사행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사행은 丁酉年인 선조 30년(1597) 겨울 陳慰使의 書狀官과 執義를 겸하여 명나라에 다녀온 것인데, 이 사행에서 소릉은 서장관의 직책을 맡아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의심을 푸는 辨誣에 주력하였다. 두 번째 사행은 辛亥年인 광해군 3년(1611) 가을 東宮告命 冕服奏請使의 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이다. 이 두 사행의 성격과 소릉의 직책이 다르다는 것은 두 사행 기간 창작된 시들의 성격이 동일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정유년 사행의 기록인 「정유조천록」에 수록된 소릉의 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爲國忠情을 중심으로 하여 國事에 번민하는 소릉의 모습을 담고 있는 시이다. 두 번째는 간간이 느끼는 자신의 우수와 갈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행 과정에서 동료들과 주고받으며 창작한 의례적인 희작시이다. 이 세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시는 「정유조천록」 속에 단 3수가 나올 뿐이다. 이와 달리 신해년 사행의 기록인 「신해조천록」에는 「정유조천록」에 수록된 시의 첫 번째 성격, 즉 國事에 대한 고민이나 爲國忠情의 의식이 드러난 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보다 「신해조천록」에 수록된 시에는 客愁와 無常感, 그리고 중국의 풍광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내용만으로 본다면 「신해조천록」에 수록된 시들은 使行詩라기보다 紀行詩나 遊覽詩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행 기록의 차이는 소릉의 삶의 태도와 관계된 것이라 생각된다. 篤信謹守의 학문자세와 必求中正의 행동 기준을 지니고 있었으며, 小學을 중심으로 한 자제 교육을 강조했던 소릉의 삶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虛僞的인 반응을 거부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소릉에게 戰亂의 원군을 불러오기 위한 辨誣의 절실함은 사행 기간 동안 다른 어떤 생각도 갖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정유 사행시 國事를 위한 고뇌와 번민이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동궁의 告命과 冕服의 주청을 위한 신해 사행에서 소릉은 정유 사행 때와는 다른 심리적 여유와 안정감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소릉에게 두 차례의 사행은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두 사행 기간 동안 창작한 시에서도 자연스럽게 변별적 양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정유조천록」과 「신해조천록」이 지니는 상이점은 소릉의 의도적 행위였고, 이와 같은 행위는 소릉이 지니고 있었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ven SoLeung SangEa Lee was not well know in academic world, he worked 65 years, most of his life in public office and also experienced very historical and political event such as ‘Japanese invasion’ and ‘Injo deposition’. He can be focused by the point of view as the person who experienced historical and political events while he was officer, but there was not many discussion about SoLeung so far. In academy SoLeung s collection, there are many evidence that can check his literature capability. Especially while checking his collection with 『Yekangseisung(여강세승)』, it can be confirmed that his literature capability was expressed by poem. Two books from all his 4 collections being made by poem, appraisal of SoLeung by JiBong SuKwang Lee being made through his poem, are proving that SoLeung s literature capability was expressed by poem. SoLeung s literature capability expressed by poem was more shaped by his experience of envoy. He had two times experiences of envoy and show his experiences in his poem. SoLeung s two envoys has two different meanings. The first envoy went China in year 1597 as an officer ‘SeoJangKwan’ to explain and solve any doubt about Chosun. The second envoy went to China in year 1611 as an officer. In these two envoy, the purpose and his title was different so these are telling that characters of poems written during these two envoy can t be same. Poems written by SoLeung in 「Jeongyujocheonrok(丁酉朝天錄)」, the envoy record in year 1579 can be classified three different patterns. The first one was that poem contained SoLeung s worry about the work for the country. The second was about melancholy and conflict sometimes being seen in poems. The last one is about normal poem while he communicated with his companies. The last patten was only found in three poems in 「Jeongyujocheonrok(丁酉朝天錄)」. Not like this, the envoy record 「Shinhaejocheonrok(辛亥朝天錄)」 in year 1611, it is hard to find the poem having the first pattern, worry about work for country and royalty for country in 「Jeongyujocheonrok(丁酉朝天錄)」. Rather then the first pattern, poem in 「Shinhaejocheonrok(辛亥朝天錄)」, worry, impassivity and scenery in China are the major part of poem. If consider the content in poem only, it can be said poem for travel or sightseeing then poem for envoy. The difference in the record of envoy might come from SoLeung s attitude of his life. He had very good attitude in study and very good and honesty standard in his behavior, and he also stressed teaching children in ‘小學’ but all these are faced in trouble in his real life so he against. SoLeung couldn t think any other then taking the goal to have reinforcement to against war during his envoy and all his worry was described in his poem in year 1597. Not like poem in year 1597, the envoy in year 1611 to deliver DongGoong s request was very different and SoLeung can have more relax and calm. These two different envoy was very different experience of SoLeung and may cause many differences in his poem that he wrote during these two envoys. So the differences of his poems in 「Jeongyujocheonrok(丁酉朝天錄)」 and 「Shinhaejocheonrok(辛亥朝天錄)」 was pretty much intentional and also showing his attitude of his life.

1. 서론

2. 少陵 李尙毅의 使行 經驗과 『少陵集』

3. 爲國意識과 少陵의 「丁酉朝天錄」

4. 餘裕 安靜과 少陵의 「辛亥朝天錄」

5. 「丁酉朝天錄」과 「辛亥朝天錄」의 거리와 의미

6.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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