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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일제강점기 이순신 유적과 유물의 관리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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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동안 이순신의 유물과 유적의 관리를 1930년대의 보존활동과 1940년대의 파괴활동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930년대에는 이순신 묘소의 위토(位土) 경매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어 이순신 유적과 유물의 보존운동이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940년대에는 경찰과 조선총독부의 합작으로 유적과 유물의 파괴활동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정반대되는 활동이 연이어 발생한 이유는 내, 외부에서 동시에 찾을 수 있다. 내적인 원인은 보존활동 주도자들의 소극적인 태도였다. 그 때문에 이 운동은 단기간의 일회성 운동으로 끝났으며, 보존운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운동으로 확산되거나 발전하지 못하였다. 외적인 원인은 조선총독부의 일관된 문화재정책이었다. 동화정책과 식민지 지배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보존활동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반시국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배척하였다. 이순신의 유적과 유물은 ‘반시국적인’ 것에 해당하여 고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보조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순신의 유적과 유물은 관리가 부실하다가 1930년대 전반기의 보존활동으로 잠시 관리가 잘 되었지만, 후반기부터는 관리가 다시 부실해져 방치되었다. 1940년에는 아예 파괴되어 흔적까지 사라진 유적과 유물이 있었다.

I want to look into the management of Yi Sun-sin s remains and relic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s two periods; one is conservation period in the 1930s, the other is destruction period in the 1940s. In the 1930s, the wito(位土) auction incident of Yi Sun-sin s graveyard was reported in the newspaper, and the movement to preserve Yi Sun-sin’s remains and relics expanded to a nationwide social movement. But in the 1940s, a joint work of the police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in Korea led to the destruction of remains and relics. The reasons for such opposite activities can be fou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internal reason was the passive attitude of the leaders of conservation activities. For this reason, conservation movement ended with a short-term one-time movement, and did not spread or develop into other movements. The external reason was the consistent cultural suppressiv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in Korea. Conservation activities could be carried out only when they were helpful for assimilation policy and colonial rule, and those that were not helpful were considered anti-national and rejected. The Yi Sun-sin’s remains and relics were not taken care of by Japanese as they were ‘anti-national’ and that did not give subsid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Yi Sun-sin s remains and relics were poorly managed, only in the first half of the 1930s, preservation activities for them were developed for a while, but from the second half, they were neglected. In the 1940s, the remains and relics were completely destroyed and disappeared without traces.

Ⅰ. 서언

Ⅱ. 1930년대의 보존 활동

Ⅲ. 1940년대의 파괴 활동

Ⅳ. 이순신 유적과 유물 관리의 의미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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