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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전후 유럽에서의 “악(惡)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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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주트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를 전공했고 이후 근대 유럽사 전반에 대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역사가이자, 해박한 역사적 식견을 바탕으로 꾸준히 국제 정세와 시사를 논했던 명석한 평론가였다. 본 소논문에서 주트는 한나 아렌트 덕분에 우리에게도 이제 많이 익숙해진 “악(惡)”에 대한 담론의 역사를 살피고, 그것이 노정하는 난제를 특유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한다. 비록 주트가 이 글에서 아렌트의 개념과 주장을 직접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아렌트의 입장과 태도가 이 글의 주요 모티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트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곤 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첫째, 쇼아(Shoah: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렌트가 이해하고자 했던 절대적인 악이었는데, 실제로 전후 유럽에서는 이 “악의 문제”가 전혀 활발히 논의되지 않았으며 유럽인들은 오히려 한동안 이를 외면했었다. 둘째, 반대로 최근 서양에서는 홀로코스트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으로 다루어 진다. 그러나 “악” 개념이 이제는 도리어 너무 남용되면서,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을 비롯한 특정 정치 집단들의 목적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악의 문제”에 대한 냉소주의가 조장되었다. 그렇다면, “악의 문제”를 외면한 종전 직후에도, 그것을 지나치게 활용하는 작금에도, 정작 “악의 문제” 자체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성찰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주트가 여기서 골몰하고 있는 난제다. 이 글은 20세기에 자행된 “악의 문제”에 대응해 온 각기 다른 집단들의 역사를 훌륭히 소개함과 더불어,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악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을 일깨운 아렌트 식의 “악의 평범성”론 뿐 아니라, 같은 것이 너무 자주 남용될 때 벌어지는 “의미의 축소와 둔감화 효과”를 뜻하는 “악의 평범화” 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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