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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규기의 『미륵상생경』 서분 이해

대승경전의 신뢰성과 서분 구조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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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기는 유식학을 계승한 중국 법상종의 창시자로서 미륵보살을 주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항상 도솔천에의 왕생을 염원하였다. 『미륵상생경』은 유송(劉宋) 455년, 저거경성이 한역한 것으로, 규기는 이에 대한 주석서로서 『미륵상생경찬』을 지었다. 규기는 이를 주석함에 있어 ‘여시아문’이란 문구의 해석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 문구는 붓다의 설법에 대한 청취와 설법처에의 참석을 보증해주는 문구이다. 따라서 대승경전들은 이 문구로부터 붓다의 설법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부파불교 이래 진행되기 시작한 불설 논란은 대승경전들이 만들어지면서 심화되는 양상을 띠었으며, 이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승경전들이 불설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신앙과 종교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규기가 당시 대승 비불설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하지만 당시 중국 불교계의 여러 상황들로 유추해 보았을 때 규기도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비록 규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대승경전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규기는 『미륵상생경』의 서분구조를 파악함에 있어 당시 통용되던 분과방식은 그대로 차용하지만, 기존의 명칭 대신 자기만의 고유한 명칭을 사용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또한 그의 서분구조에 대한 이해는 원효나 경흥의 이해와는 다르다. 경흥은 규기보다 후대의 사람으로서 『미륵상생경』을 주석하는 데 있어서는 규기의 방법론과 내용적인 면을 많이 받아들였지만, 서분구조의 이해방식에 대해서는 규기보다는 원효의 방식에 동의를 표했다. 어찌되었건 규기는 『미륵상생경』의 서분을 이해함에 있어 기존의 틀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이해방식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당시 중국과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사상적 교류를 엿보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Gyu-gi(窺基) is the founder of the Chinese Beopsangjong, who inherited Chittamatra. And he kept Maitreya Bodhisattva the main object of faith and prayed for the rebirth of Tusita-deva. 『彌勒上生經』 was translated into Chinese language by Jeogeogyeongseong(沮渠京聲) in 455 and Gyu-gi wrote the 『彌勒 上生經贊』 as a commentary on this. Gyu-gi put a lot of effort to interpretation on the phrase of 如是我聞. This phrase is a guaranteed phrase to a Buddha s sermon and attendance at the place of preaching. Therefore Mahayana-sutras has secured legitimacy that it is the Buddha s sermon from this phrase. The debate on the Buddha s sermon began after Bupa-Buddhism(部派佛敎) taked on a deepening appearance as the Mahayana-sutras started to be made. And this is the same in modern times. The question of The Mahayana-sutras s true or not, is very important not only on a religious level, but also aspect of thought. There is no clue to determine exactly how much Gyu-gi was aware of the problem that Mahayana-sutras s true or not at that times. However, it is possible that Gyu-gi was a little aware of these problems when we look at various situations to a Chinese Buddhist society. Although I don t know what Gyugi intended, he put a lot of effort into securing the reliability of the Mahayana-sutras. And Gyugi borrowed division method(分科方式) used at the time as it was, in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彌勒上生經贊』 s introduction. But he chose a method of using his own unique name Instead of the original name. Also, his understanding of the structure of introduction is different from Wonhyo and Kyungheung s understanding. Kyungheung who a person of later generations rather than Gyu-gi accepted a lot of the methodology and content When it comes to explaining the 『彌勒上生經』. But he agreed not Gyu-gi but Wonhyo s method as for how to understand the structure of introduction. Anyways Gyu-gi pursued his own unique way of understanding while accepting the existing framework in understanding 『彌勒上生經贊』 s introduction. And it can be said that these contents provide a glimpse into active ideological exchanges between China and Korea at the time.

1. 서론

2. 불설논쟁과 규기의 대승경전 신뢰성 이해

3. 규기의 미륵상생경 서분구조 이해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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