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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보령현의 읍지 『增補新安誌』 연구

A study on 『Jeongbosinanji(增補新安誌)』 , eup site of Boryeong-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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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권(鄭權)이 보령현감의 직에서 물러난 후 1748년에 한양에서 간행한 보령현의 읍지 『增補新安誌』에 대한 고찰이다. 『增補新安誌』는 현전하는 충남의 읍지 중에서 서산의 『湖山錄』 (1619)에 이어 충남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사찬읍지다. 본고에서는 읍지 간행의 시대적 배경, 목적, 서지사항, 편찬과정을 통하여 『增補新安誌』 간행에 관한 제 문제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增補新安誌』의 내용과 재지사족의 존재형태를 고찰하였다. 보령현 읍지는 『新安邑誌』 와 『保寧郡誌』 등 2종의 필사본이 전해오는데 모두 『增補新安誌』를 원본으로 한 것이다. 이 기운데 『新安邑誌』가 원본에 가장 가깝다. 『增補新安誌』는 정권이 『新安誌』 를 증보한 것으로 치세위민과 재지의 사회문화를 기록한 사찬읍지이다. 보령현에는 일찍부터 관찬지리지의 기초자료로 활용된 읍지가 존재하였고 계속하여 증보되어왔다. 이것은 『세종실록지리지』 이후 관찬지리지의 편찬이 대체로 매 100여 년의 단위로 이루어졌고, 이들 관찬지리지의 편찬이 읍지를 기초자료로 했다는 점과 1600년대 보령현 재지사족이 중심이 되어 『新安誌』를 증보했다는 사실로 입증되었다. 특히 『增補新安誌』는 타 읍지와는 달리 재지시족을 중심으로 편찬자가 구성되어 내용에 충실을 기하였다. 정권은 사마시 급제자와 유학(幼學)으로 편찬자를 위촉하여 자료수집, 교정, 편집으로 편찬파정을 세분화하여 각자에게 역할을 분담하였다. 편찬자 중 사마시 급제자가 모두 한산이씨라는 사실은 당시 향촌에서 한산이씨의 재지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다. 현전하는 2종의 필사본은 일부항목에서 편집서차가 확인되지만 『保寜郡誌』에서 인물이 추가될 뿐 내용은 서로 동일하였다. 단지 관찬지리지에 없는 사회 문화 풍속에 관한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 지역실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누정과 정자에 관한 많은 제영과시 그리고 서원, 총묘, 인물항목은 당시 향촌사회사 연구의 자료로 평가되었다. 특히 인물항목은 고려 말에서 조선 영조까지의 재지의 인물이 수록되어 있어 조선전기의 혼인풍습과 향촌사회의 형성과정 그리고 재지사 의 존재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이처럼 『신안지』는 현전하는 충남의 가장 오래된 사찬읍지 중의 하나로 17세기 중반 향촌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1. 머리말

2. 읍지의 간행

3. 『증보신안지』의 내용

4. 『증보신안지』를 통해 본 사족의 형태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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