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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고려시대의 홍주성과 흥추읍성

Hongju castle and Hongju-eup castle of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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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내 ‘의병공원’ 부지에 이어 추정 객사지, 그리고 북문지 일대에서 고려시대에 조성된 토축성 혹은 건물지가 확인되면서 홍주읍성 이전 단계에 이미 고려시대 토축성이 시설되어 있었다고 파악된다. 즉 고려시대에 홍주의 가 이미 현재의 읍성에 조성되어 있었고, 이를 어느 시기에 석성으로 하여 조선시대 읍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의병공원 부지의 토축 유구는 현재 읍성의 남서측 구릉을 중심으로 조성한 작은 규모의 토성이며, 뒤의 고려 홍주성과는 무관한 나말 여초의 유적이다. 운주성주 긍준에 의하여 군사시설 등으로 활용 되었을 기능성이었다. 둘째, 토축성으로서의 홍주성이 조성된 것은 고려 중기(12~13세기)의 일로 생각된다. 월산성 동쪽 기슭에 해당하는 월산리의 건물지는 지방제도의 정비에 따라 처음 운용되었던 관아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치소가 고려 중기에 홍주읍성 구역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때 토축의 홍주성이 조성되었는데, 그 시기는 일단 12세기 말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셋째, 고려시대 홍주성의 환축 범위는 현재로서 작은 성과 큰 성의,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다. 향후 조사에서 이 두 가지 기능성을 모두 감안하면서 사실 관계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필자로서는 뒤의 홍주읍성과 기본적으로 동일 규모, 동일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이다. 홍주읍성이 구축된 하천과 구릉의 지형적 조건 때문에 성의 공간 범위가 규정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넷째, 홍주성의 석성으로의 축성은 1377년 이후의 고려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왕 3년(1377) 9윌, 왜구의 침입으로 홍주성이 크게 피해를 보았고, 이에 의하여 기존 토축성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한 이 석성 개축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조선 초에 석성 개축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은 그것이 전 왕조 고려 말의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홍주성의 읍성으로의 개축은 1377년 이후 대략 1380년 전후가 아니었을까 추측 한다. 석성 개축 공사에서는 고려시대 토축을 이용하여 공사가 진행되었고, 소설된 인근 미륵사의 석재가 대량으로 옮겨져 축성에 사용되었다.

1. 머리말

2. 홍주읍성에서 나타나는 고려 자료

3. 홍주읍성 주변의 고려 건축물

4. 홍주성 축성과 변천의 여러 계기

5. 홍주성과 홍주읍성

6. 맺는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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