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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웅진(熊律)도읍기 백제 왕궁의 소묘(素描)

Sketches(素描) of Baekje Palace in the Ungjin(熊律)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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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사적 제1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공산성은 웅진 도읍기 백제의 궁실(宮室)이 위치한 궁성(宮城)이었음을 명확히 하고자 준비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웅진기 궁실의 소재에 대하여서는 논란이 분분한 실정으로, 공산성 안에 있었다는 주장과 밖에서 구하는 입장 간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벌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산성 및 주변 지역에 대한 학술발굴이 상당 정도 진전되어 수많은 유구가 모습을 드러낸 상황에서는 논쟁을 종합하여야 하고, 공산성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한성기에서 웅진기를 거쳐 사비기로 이어지는 백제 왕도의 체계를 발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초석 마련을 위해서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백제의 궁실을 공산성 밖에서 구하는 성외설에 대한 반론을 중심으로 진행한 논의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양직공도』, 『괄지지』, 무령왕릉 지석에 등장하는 매지권 등 문헌적 사료, 그리고 성책과 함께 그 안에서 조사되고 있는 최고의 위계를 보여주는 각종 유구와 유물이라는 고고학적 증거, 마지막으로 웅진 도읍의 지리적 환경을 고려할 때 공산성은 웅진기 백제의 궁성인 고마성(웅진성)이며, 웅진기 백제의 궁실은 그 안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산성은 그 대부에 조(朝)·침(寢)·원(園)을 구비한 백제 왕궁체계의 독특하고 훌륭한 사례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공산성 밖의 시가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또 하나의 백제 왕궁은 관념상의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1. 머리말

2. 웅친기 백제 궁실의 소재를 둘러싼 논쟁

3. 웅진기 백제 왕궁의 소묘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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