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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대한제국기 음성(陰城) 광주 반씨의 사회경제적 지위

The socioeconomic status of Gwangju Ban clan in Eumseong during the Great Han Empir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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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음성 광주 반씨 가문으로 조선후기 소읍에서 사족의 성장과정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살펴본 사례연구이다. 광주 반씨는 조선중기 반석권이 음성 보천리에 입향한 이후 대를 이어 세거하였다. 반석권의 형반석평은 낮은 신분 출신이었지만 과거에 합격하여 팔도감사를 역임하였다. 음성에 입향한 광주 반씨가 사족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가학으로 노론을 계승한 영향이 컸다. 이에 따라 당대 명망있는 노론계열 학자들과 교유하였고 적극적인 향촌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음성향교 도유사 명단 가운데 반씨가 가장 많았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광주 반씨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1900년에 작성된 『음성군양안』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단일본인 광주 반씨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많은 토지를 소유한 집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음성 농민층의 경제적 지위는 열악하였다. 상위지주도 규모가 작았고, 광작농도 확인할 수 없었다. 토지소유 규모를 보면 상대적으로 빈농층의 비율이 높았다. 이는 음성의 열악한 농업환경 요인이 크다. 음성은 산간지대이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지 못했다. 농민층의 경제적 지위가 다른 지역보다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읍세가 약한 소읍이었다는 사실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광주 반씨는 음성 전체 비율에서 소농층과 중농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두터웠다. 이것은 광주 반씨가 음성에서 비교적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머리말

2. 광주 반씨의 음성 입향과 향촌활동

3. 음성 거주와 토지소유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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