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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봉화 금정자 혼례연구

퇴계가(退溪家)에 전해지는 혼례홀기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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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퇴계가에 전해지는 혼례홀기에 따라 혼례를 올린 봉화 금정자 혼례를 중심으로 ‘한국의 혼례’ 연원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도산전서에 실려 있는 퇴계선생찬 <혼례홀기>가 퇴계 후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퇴계의 장손인 이안도(몽재, 1541~1584)는 퇴계언행록에서 1567년 퇴계의 손녀가 시집갈 때 옛날 예법을 본떠서 신랑 신부의 예견하는 의식을 올렸다고 했다. 약 200년 뒤 퇴계의 9세손인 이야순(광뢰, 1751~1831)은 김종덕에게 보낸 서신에서 신랑과 신부가 서는 위치를 서서부동(壻西婦東)으로 하면서 선조 당시에 적절하게 형편에 따라 행한 것이 이와 같았고 오히려 옛날의 뜻이 그 가운데 담겨있다고 생각하여 받들어 따랐다고 하였다. 그 후 퇴계의 12세손인 이만규(유천, 1845~1920)의 1860년 혼인 때 사용한 홀기에도 ‘서서부동(壻西婦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이만규의 혼례 홀기는 후손 인 이동후가 1962년 봉화 금정자와 혼인할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도산면 하계리에 살고 있는 진성이씨 후손들도 1962년까지 이 홀기에 의해 혼례를 올렸음을 확인하였다. 퇴계가에 전해지고 있는 혼례홀기와 ‘조선의 혼례’에서 사용하는 혼례홀기를 비교해보면 가장 뚜렷한 차이는 신랑과 신부의 서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 다. 퇴계가에서 여성중심의 ‘서서부동(壻西婦東)’을 계승해온 것은 퇴계의 혼인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퇴계의 혼인관은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양가가 서로 의논해서 조화있고 합리적으로 치루며, 상대를 존중 해야 한다고 했다. 즉 우리나라 고유 혼속인 여성중심의 혼례를 유지한 퇴계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혼례’는 가례의 영향으로 조선중기 이후 시행되어 온 혼례형식이며 ‘주자의 혼례’에서 친영을 할 때 동뢰연을 대례(大禮)에 수평 이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퇴계가에서 전해지고 있는 ‘한국의 혼례’는 우리나라 고대로부터 고유의 습속인 여성중심의 혼례 전통이 이어져 온 혼례형식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origin of Korean Wedding with a focus on the wedding of Geum Jeong-ja of Bonghwa Geum family that held a wedding according to Honryeholgi transmitted in the Toigye family. For this purpose, the investigator tried to demonstrate that Honryeholgi, which was published in Dosanjeonseo before the death of Toigye, had been handed down by the descendents of Toigye. The eldest son of Toigye s eldest son, Lee An-do(Mongjae, 1541~1584) stated in Toigyeeonhaengrok that a granddaughter of Toigye followed the old decorum and held a Yegyeon ritual between the bride and groom when she got married in 1567. In his letter to Kim Jong-deok about 200 years later, Lee Ya-sun(Gwangroi, 1751~1831), a ninth generation descendent of Toigye, said that his family followed the Seoseobudong rule to position the bride and groom. The rule was followed properly according to one s circumstances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jo, and his family believed that the old intention was reflected in it and made sure that it was followed. Seoseobudong was also recorded in the Holgi used for the wedding of Lee Man-gyu(Yucheon, 1845~1920), a 12th generation descendent of Toigye, in 1860. It was used by his descendent Lee Dong-hu for the wedding of Geum Jeong-ja of Bonghwa in 1962. It was also found that the descendents of the Jinseong Lee family in Hagye-ri, Dosan-myeon also followed the Holgi for their weddings until 1962. The study compared Honryeholgi transmitted by the Toigye family with that used in Joseon Wedding and found the most obvious difference in the positions of the bride and groom. The Toigye family inherited female-centric Seoseobudong under the influence of Toigye s viewpoint of marriage, which asked the families of the bride and groom to discuss together within the scope of courtesy, handle things in a harmonious and rational way, and respect each other. That is, it reflects the perceptions of Toigye that kept the female-centric wedding, which was a unique wedding practice to Korea. Joseon Wedding is a form of wedding implemented since middle Joseon under the influence of Garye. It moved Dongroiyeon to Daerye horizontally for Chinyeong in Zhu Xi Wedding. Korean Wedding transmitted in Toigye s family is, on the other hand, a form of wedding that has continued the tradition of a female-centric wedding, a unique convention to Korea since ancient times.

Ⅰ. 머리말

Ⅱ. 한국혼례의 역사

Ⅲ. 퇴계가에 전해지는 혼례홀기

Ⅳ. ‘서서부동(壻西婦東)’의 의례적 의미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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